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민 Nov 30. 2024

Ep12| 일본어가 발목 잡을 줄이야

없던 토익점수까지 만들어 반년만에 대졸 신입으로 입사했다. 졸업 유예, 취업 재수가 유행처럼 퍼지던 중이었으니 꼬인 군번에서 풀린 사회 초년생이 된 것이다. 입사 첫날, DMC역에서 입사동기 형과 만나 긴장과 설렘을 함께 나누며 빌딩 숲을 지나 18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도착했다.


인사팀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배속된 해외영업팀으로 이동했다. 이미 업무를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8시 30분이 되어 모두가 출근하였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쳤다. 사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팀에도 얼굴 도장을 찍었다. 사회 신병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팀 미팅이 진행되었다.


“형민 씨는 미주과 소속이 좋겠어”


해외영업팀은 그 안에서도 미주과와 유라시아과 (기억이 맞다면)로 나뉘었다. 일본 전담팀은 없었다. 묘하게 등골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회사 홈페이지에서도 일본지사의 존재를 확인했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과 상사(사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일본 담당팀은 없는 건가요? 일본지사로 출장도 갈 수 있나요?”

“일본지사는 철수한 지 좀 되었어. 미주과에서 일본 바이어도 관리하고 있어. 나중에 베트남으로도 파견 갈 거야.”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의 산업 발전과 더불어 섬유산업이 대거 해외로 이동해 나갔다. 유니클로 등 일본 섬유기업들 생산기반이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동했고 회사도 그에 발맞추어 베트남 공장과 지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사카에 있던 일본 사무소는 폐쇄된 모양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덤덤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큰 시련은 업무를 배우기 위해 이메일을 열어본 순간부터였다. 온통-! 영.어.였다. 무역서류 확인할 때나 필요할 줄 알았는데 모든 서신왕래가 영어라니. 일본어는 코빼기도 안보였다. 문장들도 토익 때 보던 것과는 달랐다. 다양한 비즈니스 문장과 업계용어가 난무했다. 하필 입사 후 첫 미션도 영어로 바이어에게 회신하는 일이었다.


토익점수만 따면 영어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마지막까지 영어가 발목을 잡는구나. 입에도 안 붙는 ‘엘빈 킴-elvin kim-’이라는 영어 이름까지 만들어 바이어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렸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다나카상, 나카무라상은 메일함 어디에도 없었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과 생전 처음 접하는 섬유 용어에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졌다.


어느 사이 입사한 지 두 달이 되어갔지만 실수가 없는 날이 없었다. 바이어에게 엉뚱한 내용을 회신하는가 하면 원단 샘플을 잘못 보네기도 했다. 매일 같이 혼났고 일 배운다는 핑계로 막차 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하루는 꿈에도 그리던(!) 일본 바이어와의 미팅이 잡혔다.


“하지메마시테, 신진노 키무데스(안녕하세요. 신입 김입니다.)”


사수와 나, 그리고 일본 상사 바이어와 회의실에서 30여분 남짓한 미팅을 가졌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사수는 바이어와 막힘없이 일본어로 대화했다. 나는 기초 일본어 때부터 뱉어봤던 하지메마시테 말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둘의 대화내용을 메모하려고 애썼지만 받아 적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팅이 끝나자 사수는 오늘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질문했다. JLPT N1이며 JPT 800점 대니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긴장했던 탓도 컸다. 나름 대학생 때는 일본어 우등생 반열에 속해 있었는데 회사에 오니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그저 바보였다. 그런 놈이 일본 해외영업을 하겠다고 들이댔으니. 사수에게 깨지는 것 이상으로 자존심이 처절하게 박살 났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업무야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언어는 다른 문제였다. 더욱이 특기라고 생각했던 일본어는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학연수를 괜히 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때마침 친하게 지내던 학과 선배형이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길로 워킹홀리데이 대행을 알아보았다.


2013년 3월 1일 입사, 동년 6월 30일 퇴사. 그토록 원했던 해외영업으로 시작한 첫 사회생활을 불과 3달 만에 마무리 지었다.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