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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Jun 28. 2022

나 또 퇴사 해야 되나.

내가 문제일까? 회사가 문제일까? 여기를 선택한 내가 제일 문제지.

"2월 15일부로 퇴사합니다."


이건 나의 대사가 아니다. 5번째 회사를 선택할 때 기준으로 잡았던 메리트 중 하나 였던, 대기업 임원급 출신의 부사장님이 무려 퇴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 한마디에 활력이 넘치던 아침 조례시간이 침묵으로 잠겨 버렸다.


입사 후 줄곧 그 분의 빠른 판단력과 상황 정리 능력에 감탄 했었다. 말 뿐만 아니라 표정 하나에도 카리스마가 느껴졌고, 이 회사에 들어오기 잘했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데 수습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상치 않은 전개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 직장에서의 슈하리.


이번에 입사한 회사는 일본의 홈쇼핑 벤더사로 성장한 회사였다. 한국내에서 인기 있던 기능성 후라이팬을 홈쇼핑에 런칭하였고 그 제품은 이곳에서도 10여년이 넘도록 롱런 하고 있었다. (단일 상품이 10년 이상 매출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 외에도 식품, 화장품, 생활가전 등 상품수는 많지 않지만 홈쇼핑에서 그런대로 반응이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일본도 온라인 쇼핑이 일상생활에 침투하면서 전통적인 홈쇼핑이나 카탈로그 통신판매는 점점 기능이 약해지고 있었다. 홈쇼핑도 주 고객 연령층이 40대 후반~60대 여성 등 중고령층 이상으로 타깃이 좁아지면서 매출성장 둔화와 함께 가격인하 압박으로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온라인 분야로 사업을 확장 시키고자 하였고 그 가운데 내가 채용 된 상황이었다. 


당시 속했던 온라인 쇼핑몰팀에는 나를 불러 준 선배 외에도 팀장급인 일본인 대리 한 명과 한국인 디자이너 1명까지 총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4번째 직장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개선해야 될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물류 관리를 스파르타식으로 경험했던 나의 눈에 재고와 발송관리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당연히 이와 관련된 소비자 클레임이 매일 있었고, 사과 전화를 돌리는 것이 일종의 루틴업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서지 않기로 했다. 슈하리(守破離: 지키고, 개선하고, 탈피한다.)의 첫번째 가르침인 지킨다(守:지킬 수)를 몸소 실천했다. 이렇게 하고 있는 대는 이유(배경상황)가 있으리라. 후에 알게 된 사실로는 특별히 온라인 쇼핑몰용으로 재고를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홈쇼핑에서 팔고 남은 재고를 온라인에 파는 상황이었고 그마저도 전화주문이나 교환용으로 출하되고 있었다. 또한 여러 쇼핑몰 사이트를 운영함에도 재고관리를 수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고 오차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외부 컨설팅을 받는 중 재고에 대한 이슈가 있었고, 이에 대한 개선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어느사이인가 수습기간도 끝이 났고 컨설팅 교육을 통해 그동안 내가 무지했던 영역 (아무리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어느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배운 내용을 실무에 적용하는 과정을 거쳤고 자연스레 온라인 쇼핑몰 매출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재고운영에 대해서도 팀 미팅 등 의견 공유가 가능한 자리가 있을 때 나의 생각을 전달 했고 하나, 둘 그것들이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재고/배송관련 클레임도 점차 줄어 들었다. 이것이 아마 슈하리의 두번째 가르침인 깬다(破:깨뜨릴 파)의 의미였던 것 같다. 


이제 리(離: 떠날 리)만 남은 상황이다. 5번째 회사에서 나는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기왕이면 이곳에서 모든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었다. (이제 이직은 그만할래)


※슈하리와 관련된 이야기는 밑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brunch.co.kr/@hmstory/26 


두 달에 한 명꼴로 퇴사를 한다면?


'어느 회사든 내 마음에 드는 완벽한 회사는 없다'


사회 생활 5년만에 이미 4차례 퇴사를 경험한터라 어느 곳을 가든 크거나 작은 불만 하나, 둘은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고 나쁨의 기준은 연봉이나 복리후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요인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난 4차례 모두 결국은 사람에 의한 퇴사니까.)


그런데 이번 회사는 그 요인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입사 그 다음달인 2019년 1월부터 평균 두 달에 한 명씩 퇴사를 하기 시작했다. 대략 20명 정도의 그리 많지 않은 인원수였기에 1명의 공백도 크게 느껴졌다. 유출은 있는데 유입이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팀간 업무의 경계도 당연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팀이었던 나는, 그로 인해 홈쇼핑 방송 보조 역할도 하게 되었다. 방송 때 쓸 도구들을 차량에 싣고 방송 세트장에서 장비를 설치하고, 철수하고. (그러면서 홈쇼핑 생방송도 현장에서 보고) 돌이켜보건데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의 공백을 다른 멤버들이 채워주어야만 했고 불행 중 불행으로 그럴 때마다 크고 작은 미스들이 발생했다. 


부사장님 퇴사 이후 회장님과 사장님(이 두 분은 부부이다.)이 모든 경영을 맡았지만 중재자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회사의 전략과 방침이 바뀌는 일이 늘어났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연말연시의 경우 일주일 이상 연휴에 들어간다. 달력상으로는 공휴일이 아니지만 이 기간에 쉬는 것은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고 고용계약서에도 이 내용은 명기가 되어 있다. 그런데 한번은 사장님의 연휴가 끝나고 난 이후 평일이었던 기간은 유급휴가에서 제외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당연히 직원들의 불만은 하늘을 치솟았고 이것이 시발점(始發點)이 되어 퇴사 사유 중 하나로도 작용이 되었다. 후일 회장님과 면담이 있어 이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본인도 파악하지 못하였던 문제였고 이미 결정 된 사항이기에 번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한국계 회사 특유의 DNA라고 하는게 맞을까? 

'어른이 말하면 들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 회사는 그것이 유독 강했다. A라는 일을 하고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B를 해오라거나 또는 어제까지는 1안이 좋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가 다음날 갑자기 1+2안으로 변경 하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대해 토를 다는 순간부터 가시방석 생활이 시작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왜 그리도 사람들이 퇴사를 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리(離)는 이곳에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닐지(이직:離職)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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