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모든 일은 해봐야 한다. 고민만 하지 말고.
"오하요우고자이마스 (おはようございます。일본 아침인사)"
도쿄 유락쵸(有楽町)에 위치한 모바일 악세사리를 취급하는 F사에 2020년 10월 1일자로 입사했다. 그러니까 일본에 온지 만7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일본회사에 취업 한 것이다.
그동안은 일본에 있는 한국계 회사에 있었고 오너와 주요 멤버들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은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당연히 쓰는 언어도 대부분 한국어였고 사람에 따라서는 십수년을 살았어도 일본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본에 있으면서도 일본 사회를 경험 해 보고 싶다는 괴상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더 이상 성장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던 5번째 회사와는 결별을 선택했다.
나는 성격이 못됐다. 어떤면에서는 차갑다.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잘라 버린다. 호의로 대한 상대에게서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손절 당하는 (그러니까 절교) 경험을 어려서부터 수차례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인간관계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사직서를 찢기던 그 순간. 내가 왜 사표를 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회사는 단 한번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회사 입장만 이야기 할 뿐이었다(뭐 당연하겠지만). 그들에게 나의 인생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길로 이 회사를 손절해야 겠다는 마음이 정말 머리 끝까지 차 올랐다.
"나는 오빠가 마무리가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나와 결혼을 앞 둔, 여자친구는 내가 퇴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면 늘 이렇게 조언을 해준다. 이번에도 그 말은 나를 진정 시켰다. 마음을 추스리고 남아 있는 기간 동안 업무 공백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온라인 쇼핑몰팀에는 운영과 배송관리를 맡던 나와 디자이너 2명만이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분야가 전혀 다르다보니 나의 퇴사에 따른 공백에 누구보다 마음이 불안했을 터였다. (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우선 디자인 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온라인 쇼핑몰 운영 전반에 대해서 매일 공부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실무의 경우는 직접 설명도 하고 텍스트 자료와 영상자료를 만들어 언제나 참고할 수 있도록 공유해 두었다.
회사에는 직속 상사를 통해서 퇴사에 대한 의사를 다시 한번 정중히 전달 했고 사장님 면담, 그리고 회장님 면담을 거쳐 최종적으로 퇴사일자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어느덧 마지막 출근날이 밝았다. 언제나처럼 마지막날은 기분이 묘했다. 이곳에서 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까. 회사 건물 여기저기, 나의 책상이며 출하작업대, 재고가 한가득이었던 창고까지. 거기에는 많은 땀과 눈물이 베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현실. 다행이도 팀원들은 일을 분담해 가면서 별 탈 없이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회사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전했고, 이렇게 약 2년간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일본 회사 첫 입사날. 회사 도착과 동시에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다지 별 반응은 없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기운이 없을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출근 시간인 9시 30분이 되어 인사팀 담당자가 나와 고용계약서와 회사내규 등에 대해서 설명 해 주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회사에서는 이런 절차들이 없었다.)
출근하면 가방을 개인사물함에 넣어야 하며 휴대폰은 사무공간에 반입 금지. 상사에게는 큰 소리로 인사하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사내 채팅방을 통해서 하되 직속 상사 등 관련자를 반드시 멘션(CC)으로 넣을 것 등등.
일본 회사에서는 휴대폰을 오피스내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다. 모바일 악세사리를 취급하는 회사인데도 이런 규칙이 있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따르면 그만이었다. 다른 회사도 그럴테니 말이다. (후일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나는 이곳에서도 온라인 쇼핑몰(EC)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팀은 영업부에 속해 있었고 멤버는 3명이 있었다. 2명은 운영관리와 디자인, 1명은 고객대응 및 사무처리를 담당한다고 했다. 고객대응이나 상품출하 등은 별도 팀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운영 쪽에만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 되며 제일 먼저 사내 메신저 전체방에 인사말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EC팀에 배속 된 김형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을 남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요'버튼이 눌리기 시작했다. 카톡이나 (일본에서 많이 쓰는) 라인이 아닌 사내메신저로 일 하는 모습이 왠지 좋아 보였다. 업무마다 별도로 채널들이 존재했고 그곳에 내용을 쓰며 소통하면 되니 효율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9시 50분즈음이 되자 아침조례가 시작 되었다. 모두들 자리에서 기립하였고 이사(取締役 : 등기임원) → 중간임원 (執行役員 : 일반적으로 비등기 임원) → 그룹 리더 → 그 외 순으로 공지사항을 전달 했다. 특히 중간 임원 중에는 내 나이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 기왕 하는거 나도 중간임원까지는 해보자'
회사 입사 첫날, 이곳에서의 목표를 중간 임원이 되는 것으로 잡았다. 이전 회사에서처럼 매출기록도 세워 보고 실적 쌓아가면서 몸 값도 높여보리라. 그리고 일본 영주권에도 도전해보리라. 이러한 다짐과 함께 일본에서의 첫 일본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