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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Jul 04. 2022

숫자놀이 시작은 퇴사의 신호.

스스로가 최악(最悪)이 되어갈 때. 

비상이다... 이번달도 매출 목표 달성은 글러먹은 것 같아.


이전까지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던 브랜드와의 계약해지로 매출 하락은 예견된 수순. 그럼에도 매출 목표는 높아져 있었고 그나마 80%대에서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후퇴는 아니였다. 그러나 이는 회사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결과로만 판단한다는 경영 이론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상여 100% 지급은 커녕 다음 반기(半期) 급여조건이 나빠질 수 있었다. 팀 리더로서 어떻게 해서든 팀의 사기를 끌어 올려 최대한 목표에 근접할 수 있는 실적을 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도 힘냅시다. (쿄우모 간바리마쇼)" 이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보고를 위한 보고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사 3개월 미만 동료들과 함께 사내 교육을 받았다. 외부 경영 컨설팅 업체 강사로부터였다. 


"성과를 올리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그는 조직내 발생 하는 '오해'와 '착각'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를 위해 숫자로 관리 가능한 평가제도가 필요함을 설파하였다. 그리고 위치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는데, 부하는 상사로부터 평가 받는 존재이지 그를 평가하는 입장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부하는 결과로 이야기하고 상사는 결과를 기준으로 모티베이션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절대, 먼저 모티베이션을 부여하면 안된다!)


회사는 상당기간 임직원들의 잦은 이탈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이러한 조직 경영 컨설팅을 도입한 듯 보였다. (이 컨설팅 업체는 일본 상장사이다.) 주기적으로 강사가 회사에 방문해 위와 관련된 내용을 교육했으며 수시로 온라인 테스트를 실시하여 기준 점수 미만을 경우, 나머지 공부 또는 재시험을 치뤄야만 했다. (직급마다 목표 점수도 다르다.)


다행이 나는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기준 점수를 넘겨 재시험을 보는 일은 없었지만, 이러한 조직 문화가 기여를 한 탓인지 사내에는 늘상 정적이 흐를 뿐이었고 상사 또는 동료들과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코로나로 인하여 재택근무가 확산 되었고 그 자리를 '보고(報告)'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김상(씨). 이번 임원 회의 때 온라인팀 실적에 대해서 보고 해야 하니 이번분기 매출 현황이랑 향후 예상 전망에 대해서 보고 자료 작성해 주세요."


수차례 팀의 직속 상사(죠쵸:上長)가 바뀐 끝에 사내 임원인 스즈키에게 배정 되었다. 30대 중후반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인 그는, 언제나 피로 가득한 얼굴에 신경질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회사내에서도 사장보다 바쁜 사람으로 인식 되고 있는 사람이었다. (차기 사장후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었다.) 


그는 매번 회의 하루 전날 보고 자료를 요청 했다. 나는 당해 회계연도의 실적을 매출, 매출원가, 판관비, 영업이익 등의 식으로 정리하여 보고 하였다. 매번 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이대로는 보고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된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대책을 내놓으세요."


늘 항상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대책'이었다.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온라인 비즈니스라는 것이 오늘 10을 투자했다고 당장 내일 10 이상의 결과가 보이는 세계가 아니다. (물론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만)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들을 기대(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품의(링기:稟議)제도가 있었다. 단 돈 1원의 지출이라도 필요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 품의를 거쳐야 했다. 제도 자체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결재 단계가 너무 복잡했다.


'사원 → 팀 또는 그룹 리더 → 중간 임원 → 경영지원 임원 → 부사장 → 사장'


약 50명이 채 안되는 조직에서 너무 많은 절차이지 않나 생각이 들지만 이에는 이견이 없다. 회사 룰이니까 따르면 그만이기에. 그러나 과정이 많은 만큼 걸리는 시간도 길다. 특히 부사장, 사장은 1주일에 딱 한차례만 결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 단계에서 반려가 되거나 임원급이 부재시에는 1주일 이상이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사진 촬영을 위해 100엔짜리 소품 하나 사기 위해서도 보통 보름이나 걸렸다.


또한 지출 품의를 위해서는 사유를 작성해야 했는데 그 사유도 "언제 어디서 100엔을 지출 할 것이며 이 100엔을 지출함으로서 얼마의 매출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대략 A4 반장내지 한장 분량이 필요했다. 보고를 위한 보고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하루 업무 시간 중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대한 딜레마


그나마 스즈키에 대한 보고는 나았다. 1주일에 한 차례 약 15분정도의 임원 참석 팀미팅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내가 직접 그들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이 자리에는 온라인 쇼핑몰팀 전원, 사장, 부사장, 스즈키 등 사내/외 임원이 참석한다.


사실 내용은 단순했다. 지난주까지 어떠한 액션/결과가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보고하는 자리였다. 가벼운 주제로 시작했던 이 자리는 내가 팀 리더가 되어 회의를 주재하면서 부터 분위기가 무겁게 바뀌기 시작했다. 매월 1천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온라인 쇼핑몰 컨설팅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외 임원의 소개로 (아주 신속히) 시작된 이 서비스는, 컨설팅 업체의 제안으로 그동안 반려 되어 왔던 광고비 증액도 무려 5배 이상 되었다. 당연히 기존보다 비용 지출이 급격히 증가 하기는 했지만 운영인력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의 존재는 그나마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런데 서비스를 도입하고 2~3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회사가 목표로 내걸었던 매출액은 달성하지 못하는 상태가 발생하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장단은 이들을 들들 볶아서라도 목표를 달성 할 수 있게끔 하라고 지시하였다.


매주 1차례씩 있던 컨설팅 회사와의 미팅때 나는 최대한 순화하여 회사의 뜻을 전했고 그들 또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을 전해 왔다.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람 마음처럼 쉽게 되던가.) 하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매주 사내 미팅에서 나는, 이들이 매출 달성을 위해 이러 이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며 변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유는 듣고 싶지 않아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반기 목표 달성을 해내게 하세요."


컨설팅 회사에서도 현재 설정 되어 있는 매출 목표는 현실적인 수치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전했왔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절대 목표를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일부 제조공장 셧다운이 발생하면서 매출 목표에 기준이 되었던 상품들도 입고가 늦어지는 상황마저 연이어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으로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 짜내며 다음 사내 미팅에 대한 부담감으로 한숨을 연이어 내쉬던 나는, 결국 가장 이상적인 숫자들로 가득한 예상 매출액 자료를 만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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