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민 Jul 01. 2022

알고 보니 블랙기업이었다.

어느날 내 옆 자리에 있던 직원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면? 

"김상(씨)의 이번 이번 반기 최종 평가는 0.9입니다." 


2021년 12월 초. 하반기 실적평가 시즌이 돌아왔다. 5월부터 기수(期數)가 시작 되기 때문에 11월에 성과 집계 후 12월에 평가결과가 전달 된다. 이 평가결과에 따라 상여와 다음반기 급여가 결정 된다. 직장인으로서 가장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항 중 하나다. (상여는 기본급에 위의 평가지수를 곱한 금액만큼 지급된다. 물론 세금빼고.)


스즈키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듣고 나서 부터 급격히 의욕히 저하 되기 시작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KPI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달성이 어려운 목표였기는 했지만, 팀원들과 서로 다독여 가면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돌아 온 것은 급여 동결과 상여 삭감.


세상 사람들은 점점 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나는 뒤로 후퇴하는 것 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6개월만에 평사원에서 팀리더로 


이 회사와 면접 당시 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나는 현재 받는 급여와 거의 동등한 수준에 희망 연봉을 제시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평사원 (이곳은 경력 상관 없이 대부분 평사원부터 시작한다.)에게 이 급여를 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회사는 6개월마다 평가를 합니다. 실적만 내시면 김상이 제시한 급여 이상으로 받으 실 수 있습니다. 1년만에 중간임원으로 승진한 경우도 있구요."


실적에 의한 평가를 받는 다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은 연공서열이나 나이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 하기 위해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표)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각 항목별로 수치적 목표치가 있었고 이를 얼만큼 달성하느니갸 관건이었다. 나에게는 미국계 아웃도어 모바일 악세사리 브랜드의 출하량과 아마존재팬 매출 증대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입사 초기에는 전반적인 업무 파악과 현재의 각 몰들의 상황을 체크했다. 보아하니 SEO대응이 대체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내 전체에도 이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놀랬다. 규모가 어느정도 있는 회사였기에.) 그래서 위 브랜드 상품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유의미한 키워드를 삽입하고 대표 섬네일 수정하고.


그렇게 반기가 끝났고 팀 내에서 유일하게 KPI 120% 달성을 했다. 기대했던 대로 상여금은 (조금) 더 받았고 평사원에서 팀 리더로 승진을 했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급여 조건: 기본 급여 상승, 직급 수당 추가, 특별 수당 0엔 = 합계: 증액 '0엔'


1달에 1명 이상이 퇴사하는 회사


그리고 또 한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은 직원의 이탈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이다. 5번째 회사때도 두 달에 한명 꼴로 퇴사 하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는 그 이상이었다. 인사팀은 매일 같이 면접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늘은 누가 퇴사 한다고 인사 할지가 사원들의 관심사가 될 정도였다.


일반 직원들만 그만 두는 것이 아니고 중간 임원들도 심심치 않게 회사를 이탈했다. 나의 채용에 관여 했던 중간 임원(그가 1년만에 중간임원으로 승진했던 사람이다.)도 내가 채 1년을 채우기도 전에 퇴사했다.


이렇게 위,아래, 재직기간의 길고 짧음 상관 없이 직원들의 이탈이 심하다보니 업무들이 연속성 있게 돌아가기 어려웠다. 무언가 문제가 터져도 그 사람은 이미 퇴사하고 난 다음이었고 후임자로 들어온 사람은 내용을 모른다. 그러다보니 상품 신규 런칭은 물론이거니와 기존 제품들도 공급 차질로 인한 클레임이 연이어 발생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속했던 EC팀은 이탈자가 없었다. 다만, 신규 인원 채용에 매번 실패 할 뿐이었다. 


회사가 이지경이 된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사내 휴대폰 사용 금지, 사무공간 밖으로 이동하는 일 조차 일일히 상사에게 (커뮤니티에 공개적으로) 보고 해야 하는 것, 수시로 늘어나거나 바뀌는 사내 규칙, 임원급의 절대적인 권력. 그리고 제한적인 급여 상승 폭...


사실 다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어차피 따르기만 하면 되고 어느 회사든 규칙은 있을 것이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법이 없어 무질서한 세계보다는 질서 있는 세계가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뛰어 넘는 큰 벽이 있었으니 바로 KPI였다.


처음에 120%를 달성하고 나니 다음 목표는 이보다 강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팀리더급이 되면서 이제는 팀원들의 성과 달성 여부가 나의 성과지표에 연동 되기 시작했다. (그거 까지는 좋다 이거야.) 문제는 매출에 대한 것이었는데 매출 목표가 전반기 대비 200% (그러니까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어제까지 100만원이었던 매출을 200만원을 만들어 내라니. 


엎친데 덮친격으로 매출에 30% 이상을 차지하던 일부 브랜드들과는 계약이 해지되었고, 광고비 등 비용 지출에 지독하리만큼 인색한 상황이어서 프로모션 없는 매출 증대를 달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게 KPI 목표만이 상한선을 달리고 있을 때, 팀 멤버의 이탈이 시작 되었다.


"다음은 내차례인가..."

이전 13화 일본에서 일본회사에 취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