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이라는 말의 무게. 홀로서기에도 시장의 논리가 존재한다.
오늘도 매출은 0원.
4번째 회사를 퇴사하기 전, 이제는 회사생활이 아닌 내 사업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주간 전체회의 때도 모두의 앞에서 독립을 퇴사의 변(弁)으로 늘어 놓았던 터였다. 그까짓 비즈니스가 뭐 어렵다고!
돌이켜보건데 주제 파악은 커녕 잔뜩 똥 멋만 가득차 있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 원리의 뜻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로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몇주전부터는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하기 시작했다. 지난 반년간 누려보지 못했던 저녁시간 때의 여유가 어찌다 달콤하던지! 집에 도착하고 저녁을 먹고나도 9시가 체 되기도 전이었다. 기왕 독립하기로 마음 먹은거, 일본에서 온라인 쇼핑몰로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퇴근 이후와 주말시간을 활용해서 일본 내외의 B2B 사이트에서 소싱할 만한 상품을 찾아 보았다. 비용 부담이 없으면서 운영하기 쉬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알아보던 중 '교통카드 케이스'를 선택했다. 우리나라에 T머니카드가 있다면 일본에는 SUICA(스이카), 파스모 등 다양한 종류의 IC교통카드가 있다. 2018년 당시만 해도 모바일 교통카드가 활성화 되기 전이여서 교통카드를 하나, 둘씩은 기본적으로 들고 다녔던 때이다. 부피도 적어 배송비가 저렴한 우편으로 보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월 입점비용 0원인 야후재팬 쇼핑에 사입한 상품을 등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사진도 찍고 상품페이지도 만들어서 올리는 식이었다. 상품등록은 지난 3년 가까이 해왔던 일이었던지라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제 팔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자본이 많이 (사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품 및 재고수는 각각 10개 이내로 제한하여 운영했다. 광고 또한 하지 않았는데 당시의 나 또한 광고에 돈을 들이는 것에 인색했었다. 그럼에도 등록 후 몇일이 지나자 첫 판매가 이루어졌다.
팔리는 속도가 빨라지면 소싱하는 상품과 재고를 늘려가면서 쇼핑몰 규모를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전략이었다. 아직 1개 밖에 팔리지 않았는데도 마음은 이미 초대형 셀러에 등극한 기분이었다.
"거봐라. 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1개가 팔리고 난 이후 어쩐 일인지 더이상의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서브 장르로 사입 했던 레오파드 무늬 귀걸이는 힘들게 상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첫 사입 이후 제품 판매가 중단 되었다. 그나마도 10개 중 3개는 불량.
"뭐하러 굳이 야후에서 판매를 해? 라쿠텐도 아니고. 그걸로는 먹고 살기 힘들텐데..."
퇴사 후 온라인 비즈니스로 사업을 하고 계시던 한인 커뮤니티의 한 선배에게 근황도 전할겸 겸사 겸사 연락을 드렸다. 그는 내가 잡은 방향성(플랫폼)이 초보 셀러에게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충고 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점심사 및 월간 요금 등 진입 장벽이 있는 라쿠텐에 비해, 모두에게 오픈 되어 있는 야후재팬 쇼핑은 그것이 쉬운 대신 경쟁이 배 이상으로 치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는 SOFTBANK 통신사 유저들이 이용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대중적 이미지가 약했고, 유저 중 남성 비율이 여성보다 높았다.) 이러한 배경 상황, 그러니까 내가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의 입지조건을 무시한채 그저 돈이 안들어간다는 이유 만으로 야후라는 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엑세스수는 하루에 10건을 간신히 넘을 정도였고 그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이루어나지 않았다. 호기롭게 월급이며 카드로 사입 했던 물건들은 미동도 없이 방 한구석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페이지가 별로인가? 사진을 다시 찍을까? 문장을 수정할까?
쇼핑몰에 상품을 올리는 것 외에는 경험이 없으니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만 (근거 없이) 무작정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금 보자면 엑세스수가 낮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상품페이지가 검색 결과에 잘 노출 되고 있는지 (IMP)? 검색 될 만한 키워드로 상품명이나 컨텐츠가 등록 되어 있는지(SEO)를 살펴 보았어야 했다. 그러니까 줄 곧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헤매이는 동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도 없을 뿐더러 이렇게 가다가는 당장 집값 내는 것도 어려워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월세도 비싼 도쿄땅에서... 이 이상 사입하는 것도 무서워졌다.
"형민아.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온라인 사업을 키워보려고 하는데 합류 할 생각 없어?"
여느때처럼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고 있던 중 일본에서 알고 지내던 형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 온라인 쇼핑몰 사업 확대를 위해 충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때마침 전문 업체에 운영 노하우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다고. (내가 일전에 라쿠텐 운영 하던 것이 기억이 나 연락을 줬다고 했다.)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비록 독립(창업)에서는 한발짝 물러나는 일이기는 했지만 실무 경험과 운영 노하우를 습득하면서 급여소득을 얻을 수 있으니 메리트가 더 크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이 회사도 비록 한인(韓人)기업이기는 했지만 이번 직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일본인 비율이 절반 정도 였고 이곳 임원진의 경력도 화려했는데 그 중 한 분은 국내 대기업 임원으로 계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시스템적으로도 일반 중소기업보다는 안정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사업을 위한 자금도, 내 상품 (서비스)을 사 줄 고객도 없었던 터. 망설이고 있을 시간에 차라리 일을 더 하자는 마음으로 2차면접을 거쳐 2018년 12월 마지막 주, 3개월간의 짧은 독립 시도를 뒤로한채 5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