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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17. 2024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삶

어느 사회복지사의 인생

재생불량성빈혈 치료 후 한 달 뒤에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교수님이 말렸던 대학생활이었지만 나는 4년의 시간을 꽤 잘 견뎌냈다. 낮았던 혈액수치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서 몇 년 후 정상수치에 다다랐다.
학교가 오르막에 있어서 친구들과 수업을 들으러 갈 때면 뒤처져서 걷기 일쑤였지만 발맞춰 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괜찮았다.

내가 선택한 과는 사회복지학과였다. 언니는 취업이 잘 되는 경영학과를 가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사회복지학과를 고집했다. 기독교인이라서 주변에 사회복지학과를 나온 분들이 많았던 영향도 크지만, 더 큰 이유는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싸울 때면 두려움에 휩싸여 이불속에서 울면서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었다. 어디선가 울고 있을 나와 같은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재생불량성빈혈로 아프고 힘들 때, 여기저기에서 도움받은 기억이 컸기에 이젠 내가 나눠줘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생활도 참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놀면서 지낼 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4년간 거의 빠짐없이 장학금을 받았다.
교내에서 일하면서 받는 근로장학금도 신청해서 학교도서관에서 오랜 기간 일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
어딘가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말을 들으면 뭐든 신청하려고 해서 추가적인 장학금도 받았었다.

사회복지학과 수업만 들어도 빠듯한 스케줄이지만 나는 보육교사자격증도 따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 보육학과 연계전공을 했다. 보육학과는 타과생들에게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이었기에 어떻게든 점수를 받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했다. 공부하면서 틈틈이 기독교동아리, 봉사동아리에 참여했고 3학년때는 과대표를 하기도 했다. 물론 연애도 많이 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대학생활 내내 버리는 시간 없이 참 열심히 살았다.

그중 건강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학교 2학년, 그러니까 2009년 여름에 태국으로 선교를 다녀왔었다. 선교를 다녀오니 뉴스에는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으로 뒤덮여있었다. 2009년 5월만 해도 감염자가 몇 안되었고 두려움도 크지 않았는데, 여름을 지나면서 감염자가 급격하게 늘고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었다. 지금의 코로나19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한국에 입국했을 때만 해도 컨디션이 좋았는데, 며칠 후 고열로 앓아눕게 되었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같은 방 언니가 내 상태를 보더니 신종플루가 의심된다고 기숙사 관리자에게 말을 했나 보다. 관리자는 나를 즉각 빈 방으로 옮겨 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재생불량성빈혈 판정받았을 땐 두려움이 없었는데 신종플루에 걸리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도가 절로 나왔다. 몇 시간 후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가봤더니 감염예방복을 입은 보건소 직원들이 나를 데리러 왔단다. 보건소에 도착해서 검사를 하니 역시나 신종플루였다. 인근 병원 1인실에 격리되어 며칠간 약을 먹으니 다행히도 금방 나았고, 나는 그 지역구 1호 신종플루 감염자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4학년이 되었고, 나는 졸업 전에 서울에 있는 한 복지관에 취업을 하게 됐다. 처음엔 총무과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사례관리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대상자분들과 상담하고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는 이 일이 너무 행복했다. 공모사업에 당선되어 30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장기 프로그램을 이끌 때, 어르신들의 미소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몇 년 후 이직을 하여 노인복지관,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10개월 만에 합격하여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복지업무를 하면서 늘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는 이전에 있었던 복지관이나 센터와는 다르게 큰 부담감과 고통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자부심이 사라지고 버겁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렇게 몇 년 후, 남을 돌보다가 나를 돌보지 못해 병이 찾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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