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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an 23. 2023

Freedom from the kitchen

변해가는 명절 풍속도

 

부엌일, 시간 먹는 하마 


아무리 간단하게 끝낸다 해도 부엌일은 시간 잡아먹는 하마다. 아들 녀석이 몸상태가 안 좋아 비실거리고 있어 냉동실에 손질해서 보관해 둔 전복을 꺼내 죽을 끓일 참이다. 명절 먹을 음식 준비도 다 된 상태라 굳이 부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데 긴급변수가 발생했다. 


그런데 한번 일을 시작하면 나는 한꺼번에 하는 스타일이라 냉동실에 넣어둔 떡볶이용 떡과 어묵을 지나칠 수 없다. "냉동실에 재료를 오래 두면 좋지 않아. 하는 김에 떡볶이까지 하자." 선물로 받아먹지 않고 보관해 둔 청국장페이스트도 보인다. "그래 청국장도 끓여놓자. 저녁에 먹게. " 갑자기 발동이 걸렸다. 김치 쫑쫑썰고 우거지 넣고 두부 썰어 청국장을 끓였다. 


갑자기 일이 커졌다. 잠깐 방문한 부엌에 체류시간이 길어졌다. 전복을 꺼내 해동시키고 내장을 볶느라 참기름을 꺼내 달달 볶고 밥도 볶아 구수한 참기름냄새가 배이게 한 후 물을 넣고 끓인다. 전복죽에 넣을 야채를 다지고 전복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적당히 물이 끓으면 넣어 더 끓인다. 생각만으로는 금방 끝날 것 같은 자잘한 일들을 합쳐놓으면 부엌일은 시간을 무한히 잡아먹는 하마다. 하마의 마법에 걸려 야채를 꺼내어 썰고 양념장을 꺼냈다 집어넣고 하며 허리를 숙이기를 여러 번 하고 칼질을 하니 어느새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 허리가 말을 걸어온다.      


"주인님, 허리 생각 좀 해주세요!"

      

"아, 맞다. 내가 부엌을 멀리 하기로 했지. 허리 이 친구 때문에.... " 

      

부엌에 이러고 몇 시간 서있으면 그 대가로 몇 시간 누워 있어야 한다. 그 정도로 허리가 부실한 나는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한 이후로 허리 관리에 들어갔고 절대 무거운 물건 들지 않기, 구부리는 자세 금지, 꾸준한 스트레칭 운동 등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달고 산다. 그랬기에 특히 잔 몸동작을 여러 가지로 바꾸며 움직여야 하는 부엌일을 하고 나면 초죽음이다. 몇 시간 다시 누워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이전에 하던 일을 이어 할 수 있는 집중력이 떨어진다. 부엌에서의 시간과 함께 그렇게 나의 하루가 다 가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결심한 freedom from the kitchen.   


하마로부터의 도피 

   

내 부실한 저질체력 때문에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나는 부엌을 포기했다. 스윗 스윗 홈의 필수조건인 부엌. 가정의 행복의 센터인 부엌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아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사정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스스로 선언해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 점점 살아 있는 날이 줄어드는데 몇십 년을 부엌에 내 삶을 다 바쳤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피어올랐다. 잘 되어 가고 있냐고? 그래서 고르게 스윗 스윗 홈의 센터인 부엌을 가족이 화평하게 번갈아가며 사용하느냐고? 


쉽지 않다. 남들이 다 하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에는 그만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내가 자유를 얻는 만큼 지불해야 하는 대가 말이다. 어머니의 밥상 하면 떠오르는 훈훈함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어머니의 밥상을 대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아이들은 따스한 어머니의 밥상을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따로 사는 녀석도 있고 함께 살아도 식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활 사이클이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 식사를 하며 엄마의 밥상을 대하는 건 이전에 비해 확연히 드물어졌다. 메뉴는 간단해졌고, 자주 사서 먹는 음식에 의존한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하여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자주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된다. 


파블로의 개처럼 


모성이라는 그림자는 자꾸 나를 부엌으로 끌어당긴다. '여자가', '엄마가' 하는 그런 말은 숙명처럼 어디선가 메아리쳐 울린다. 무엇에 홀린 듯 주문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부엌을 향한다. 명절 전날. 파블로의 개처럼 종소리를 듣고 나는 침을 흘린다. "그래도 명절이잖아. 집에서 지지고 볶는 냄새가 나야지. "그저 전복죽 하나 끓이려다 나는 땡땡땡하는 종소리를 듣고 마법에 빠져든다. 파블로의 개처럼 침을 흘리며 부엌의 일이 커져 버렸다. 냉장고의 활용가능한 재료들이 다 튀어나와 버렸다. 전복죽을 끓이는 중에 두부도 굽고, 청국장도 끓이고, 떡볶이도 만들고, 야채도 손질해 놓고, 그 사이 중간중간 나오는 설거지도 하고, 간장을 큰 통에서 작은 병에 옮기고, 씻어 놓은 그릇은 바로 싱크대 안에 수납하고, 행주질을 하고.... 


안 되겠다 싶은 순간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듯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분명 한가한 명절 전날을 보내기 위해 예약주문한 전과 잡채를 이미 사두었고 해물탕 재료와 떡국 재료는 다 준비가 되어 있다. 모여 함께 끓여 먹으면 되도록 간단하게 준비를 다 마친 상태다. 지지고 볶고 안 해도 되도록 말이다. 그래놓고 내가 위반을 했다. 반칙을 저질렀다. 그래도 다행히 내 자동시스템에 경고 사인이 들어왔다. 


주인님 쉬셔야 합니다.

      

부엌에서 한참을 보내고 나니 몸이 지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다시 누워 기력을 회복해야겠다. 과거에는 그렇게 부엌에서 지내다 날이 저물었다. 체력이 되지 않는 나는 그래서 부엌과 어쩔 수 없이 멀어지기로 한 셈이다. 부엌에서 지지고 볶는 시간이 줄어들어 조금 밋밋한 듯하다. 그런대로 명절에 함께 나눌 음식은 소박한 준비가 되어 있고 종소리에 홀려 부엌에서 부산을 떨다 누워있으니 딸아이한테 연락이 왔다.   

  

freedom from the kitchen 그 이후의 풍속도 

 

엄마, 필요한 거 없어? 

응 음식은 준비 다 되어 있으니 내일 함께 간단하게 준비하고 세팅해서 먹으면 돼. 

이번에는 해물탕재료를 준비했는데 떡국하고 조합이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해물탕은 다음에 먹을까?  

같이 먹어도 좋아요. 

그래? 그럼 이번에 일구인덕션을 구입했으니 식탁에 놓고 해물탕 끓이고 다른 음식이랑 먹으면 되겠네. 길 막히니까 아침에는 좀 서두르고.   

제가 갈비를 준비했는데 갖고 가서 아침에 구울게요.  

갈비를 했어? 

뭐 간단하게 해 봤어요. 

우와!  


고스란히 엄마 몫으로 되어있던 부엌의 일들이었다. 

엄마의 노화와 함께 우리 집 명절 풍속도가 변해가고 있다. 

노화 때문이 아니라도 엄마에게 집중된 부담이 진작에 덜어졌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변화를 위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그렇게 새로운 명절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모처럼 대면으로 

함께 만나니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모두가 함께 

쉴 수 있는 

명절이 되기를 

빕니다. 


Wishing you a Really Peaceful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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