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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14. 2023

고백

      

고백   

감추기 어려운 건 무얼까? 그건 불! 
낮에는 연기가 드러내고
밤에는 불꽃이 드러내지, 그 무시무시한 것. 
감추기 어려운 것 또 하나는 
사랑. 아직 가만히 품고 있어도 
아주 쉽게 눈을 넘어 나가지. 
숨기기 가장 어려운 건 한 편의 시 
써서 동경 밑에다 놔두진 못한다. 
시인이 즐겁게 노래 부르고 나면 
그건 속속들이 그의 몸에 스며들지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적어 좋고 나면 
온 세상이 그걸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 
시인은 시를 누구에게든 즐겁게 큰 소리로 읽어 준다네, 
그게 우리를 괴롭히든, 북돋우든. 

괴테 『서동시집』       



빠알간 부끄러움      


꼬깃꼬깃 호주머니에 숨겨놓았던 

이야기는 

꺼내놓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화안한 빛에 금방 쪼그라들며 

케냐 커피를 머금은 커피잔은 

빠알갛게 낯을 붉히지.      


호주머니 속에서 

빛바랜 시커멓고 누런 생채기는  

이야기를 타고 

귀 기울이는 친구의 마음 한 켠으로 

듣기가 허락된 빠알간 커피잔 속으로 

비 내리는 날 

우리를 위해 마련된 지하 커피가게의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부끄러워 견딜 수 없어 

커피잔은 점점 더 붉어진다.      

밤새 부끄러워 잠을 설쳤다. 


빠알간 부끄러움을 

사랑해야 할 시간이다. 

비가 개이고 고마운 아침에 

화알짝 핀 흰꽃나도사프란이 

인사를 건넨다.  

    

부끄러워도 괜찮아!       

    






괴테는 숨길 수 없는 것 세 가지를 불, 사랑, 그리고 시라고 했다. 

내가 꺼내놓고 싶었던 생채기는 어디에 해당할까? 

불일까? 사랑일까? 시일까? 

오늘 시가 써지는 걸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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