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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Sep 18. 2021

실패를 다루는 마음에 대해서

시험 삼수, 이번 시험 망쳤어요. 조각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비하던 자격시험을 어제 치렀습니다. 좋지 않은 결과가 예감돼요. 240분 간의 시험 시간 내내 나의 부족함만을 느꼈으니까요. 시험 종료 타종이 울리고, 답안 네 장을 제출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죄스럽던지요.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벌써 해를 넘겼는데, 그간 마음의 흐름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가장 절망이 큰 현재 제가 이 마음을 어떻게 뛰어넘고자 하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또, 다른 분들은 실패로 다친 마음들의 상처를 어떻게 닫아내고 계신지 궁금해요.


준비하는 마음


이 시험을 처음 준비하게 된 건 재작년입니다. 이 자격증은 준전문가(Semi-professional)와 전문가(Professional) 2개 단계로 나뉘어 있어, 차례대로 차근차근 취득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무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거든요. 


그렇게 재작년 준전문가(Semi-professional) 자격증을 처음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출근하기 전 한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했습니다. 하루 20쪽에서 30쪽 정도를 공부하다 보니, 600쪽 되는 교재 1회독은 할 수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준전문가는 첫 시험에 바로 합격합니다. 이때 어떤 용기와 위안을 얻었어요. 조각 시간이더라도 꾸준히 한 곳에 투자를 하면 쌓여서 하나의 성과를 이룰 수 있구나. 하니까 된다. 하고요.


*Note: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제가 준비하던 자격증은 '데이터 아키텍처 준전문가(DAsP)/전문가(DAP)'입니다. ➡자격시험 소개 페이지 


그리고 전문가(Professional)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어요. 주변에서는 쉽지 않을 거라고 하지 말라며 말리시는 분도 계셨고요, 젊은 나이이니까 도전에 의미가 있다며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시작도 전에 안 될거라는 의견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보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결심이 굳어졌어요. 희망의 불씨와 자신감도 맘속에 품고 있었고요.


인고하는 마음


그렇게 전문가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글은 시험 수기가 아닌 만큼,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제의 시험이 벌써 세 번째 도전이었다는 점만은 언급을 하고 싶습니다. 시험이 3개월에 한 번씩 연 4회 치러지니, 삼수라고 해도 9개월 남짓한 시간입니다. 그간의 심경적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첫 번째 시험(03/27) - 일단 GO 하는 마음  

준비: 시간 안배 감각과 모델링 문제 난이도 파악을 위해 응시.  가벼운 마음.
시험 중: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손 벌벌 떨며 답안 작성. 조급한 마음.
퇴실: 답안지를 갈무리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목적 달성. 후련한 마음.
결과 확인:  과목별 점수를 확인하며 전략 수립(취득점수 60점, 합격선 75점). 희망적 마음


    두 번째 시험(06/05)  - 의지 가득한 마음

준비: 이번에는 시간 내에 모델 완성하자! 의지 불타는 마음.
시험 중: 시간에 채찍질당하는 건 이전 차수와 같았지만 완성해냈다. 뿌듯한 마음.
퇴실: 합격하는 거 아니야? 김칫국 마시는 마음.
결과 확인: 필기 한 과목 과락에 충격. 이래 놓고 합격을 기대했었다니.. (취득점수 70점, 합격선 75점). 자신에게 실망한 마음.

  

    세 번째 시험(09/12) -  부풀다 조각난 마음  

준비: 이걸 또 준비하고 있다니. 교재 700페이지 미쳤나. 지겨운 마음.
시험 중: 이 모든 게 왜 더 어렵지... 멘털 붕괴.
퇴실: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다. 다음 시험도 자신이 없다. 아픈 마음.
결과 확인: (10/08 예정) 


실패를 예감하는 마음


세 번째 시험을 치른 직후인 현재, 저의 마음은 실패를 예감하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 시험 탈락 후까지, 제 자신감은 계속해서 상승해왔어요. 다음번은 더 잘하겠지, 다음 번은 합격할 것 같아! 라며, 희망적이었는데요. 어제 세 번째 시험을 치르면서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시험은 총 4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치러집니다. 100문항의 객관식 문제를 풀고, 단답형 답안 하나와 모델링 답안 하나를 제출해야 해요. 답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 문제들로 괴로운 마음을 다잡아가며,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쫓겨 헐떡이며 4시간을 뛰었습니다. 그리고 시험 종료 타종. 답안지를 제출하고, 터덜터덜 시험장을 나오는데 마음이 어찌나 어둡던지요. 이전 시험에서 모르겠던 것들은 여전히 답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이전 차수 시험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공부를 한 만큼 더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뿐이었어요. 절망 또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게 된 거죠. 이전에는 '그냥 모르겠다'였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를 모르는지 내 앞의 벽의 높이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벽이 한참 높아만 보여요.


제 마음은 푹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어쩌나 이걸.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


앞이 깜깜해진 그날 그 시간, 귀갓길 내내 내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또, 나는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예감하고 있었던 상황이 벌어진 것뿐인 이 상황에서 왜 괴로워하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자문해 보았어요. 나는 제대로 노력했는지,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요.


    노력  

Q1. 이번에 내가 한 노력이 헛되지 않고 의미가 있었는지? ➡ YES
Q2. 노력이 의미 있었다면, 충분히 노력을 했는지? ➡ YES
Q3. 충분히 노력했다면, 현명히 노력을 했는지? ➡ NO (이해 없이 암기에 급급했다.)

 

    가치  

Q4. 나는 이 자격증을 여전히 원하는지? ➡ YES
Q5.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인지? ➡ YES
Q6. 당장의 승진이나 프로젝트 투입에 도움이 되는지? ➡ NO (실무 기반이 없다.)    


이 두 가지를 정리해보고 나니, 제 슬픔의 원인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마트하게 시험을 준비하지 못했고(헛고생ㅠㅠ), 이 공부가 가지는 장기적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조급해하고 있었습니다. 


실패를 뛰어넘는 마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어요. 그리고 무작정 달리러 나갔습니다. 이미 마음이 갈 곳 잃었으니 어디로 달려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발 닿는 대로 가보자, 그리고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문다면 꼬리를 물고 물어 어디까지 가는지 그 꼬리 끝까지  쫓아가 보자.

실패를 예감하는 9월, 공릉천.

9월 초순의 오후 다섯 시는 여전히 해가 따뜻했어요. 바람 한 점이 없어서 허공을 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느릿느릿 터덜터덜 그렇게 달렸습니다.  숨이 차곡히 차오르기 시작하자 슬금슬금, 슬픔이 또 고개를 듭니다.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했나. 답안지의 모델에 표현하지 못한 선 하나, 단어 하나하나 자꾸 되뇌게 됩니다. 이 후회로운 생각만으로도 온종일을 채울 수가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정말 이 생각들에 온종일 매달려 있을 건가? 온종일을 슬프고 자책하는 마음을 들고 살겠다는 건가?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찢어진 마음에 무게추를 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동 계획에 무게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순식간에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시험을 준비할 테죠. 왜냐면 이 공부가 하고 싶고, 내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해낼 수 있다란 생각도 있으니까, 저는 포기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것은 좌절이 아니라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에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발걸음에 마저 힘이 실렸어요. 나는 어차피 포기를 못한다, 포기를 못한다면 선택은 노력하는 미래뿐.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슬픔이 한 꺼풀 벗겨집니다. 


달리면서 되뇌었어요.


첫째, 나는 이 자격을 여전히 원한다.

가지고 싶고, 내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격증이다.
계속 노력해야 한다.


둘째, 나는 이 자격을 얻기에 부족함이 있다.

나는 75점 합격에서 5점 모자라서 불합격을 했다고 위안 삼을 것이 아니라,
100점 만점의 시험에서 30점이나 놓쳤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 나에게 이 자격증은 시작도, 끝도 아닌 하나의 정거장이다. 

지금까지는 직행하지 못했을 뿐, 돌아서라도 가면 된다.
영영 이 정류장에 도착하지 못한대도 다른 여로가 있다.


돌아서라도 가는 길에 대해서, 저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당분간 이 시험에 응시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다만 다른 지식을 좀 더 채우고 오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하려던 것 공중에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음을 깨달았거든요. 성을 쌓으려면 토대부터 닦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마음이 실패를 뛰어넘으려면 실패를 되뇌고 있는 마음에게 새 길을 터주어야 하는 것 같아요. 

마음에 새 계획을 주세요. 마음은 우리 생각보다 더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움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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