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미학
미국에 있을 때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를 읽었다. 현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통쾌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대로 살지 못하고 여전히 스스로 피로해지려 하는 내 모습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그의 책이 나오면 주저없이 구매했다. 군대에서 「투명사회」를 읽었고, 전역 후에 「에로스의 종말」을 읽었다. 지식인에 대한 질투심이었을까? 나는 그의 사상을 어떻게든 배우고 싶었다. 모두가 다 아는 일인데, 나만 모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읽었다.
그런 그가 「아름다움의 구원」을 썼다. 나는 미학에 관심이 많다. 전시회 가는것을 즐기고, 미학에 대한 책을 읽고, 주변사람들에게 소개도 많이 해준다. 하지만 전문적인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니 한편으로는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한 마음으로 그의 책을 서둘러 구입했다. 마치 동네 조기축구에서 볼을 좀 잘 다루는 인물이 프로 축구선수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책은 어렵다. 미메시스니 엔트로피니 하는 등의 철학 용어 뿐 아니라 과학 용어까지 등장한다. 물론 어휘력이 뛰어나고 기본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필요 없겠지만, 나같이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을 때, 한편으로는 단어들을 검색해가며 읽어야 한다. 때문에 일반 공책이나 수첩 정도로 얇은 책임에도 완독하는데에는 며칠씩 걸리곤 한다. 하지만, 이번 책은 의외로 빠르게 읽었다. 이전에 읽은 책인 「투명사회」와 「에로스의 종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투명사회부터 이어온 "긍정성"에 대한 위험을 이번 책에서도 다루고 있다.
그의 책의 표지에는막대풍선으로 만든 푸들이 한마리 그려져 있다.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더니 왠 푸들? 하고 생각할 뻡한 이 그림은 제프 쿤스의 조소작품인 '풍선 개'를 그린 것이다. 매끄럽고 말 그대로 터질듯한 볼륨의 풍선 개를 스테인리스로 만든 이 작품은 현 시대의 예술을 대표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제프 쿤스의 작품에는 어떤 재앙도, 상처도, 깨어짐이나 갈라짐도, 심지어 봉합선도 없다. 모든 것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이어진다. 말 그대로 긍정적이며 "구원"에 이른 상태이다.
제프쿤스의 작품 뿐만 아니라 현대에는 "매끄러움"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 번튼들을 최소화 하고 매끄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아이폰과 털이 하나도 없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그러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좀 억지 같지만...) 제프 쿤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심오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고 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아름다움이다.
한병철에 의하면 기존의 아름다움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랐다. 이전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깨부수는 친부 살해의 정신이 바로 예술과 아름다움의 발전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예술을 접하는 사람들은 눈쌀을 찌부리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는 전율과 엄습, 상처를 수반하였다. 이전에 진리라고 믿어오던 것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미를 창조해내는 이들은 항상 숭고하였으며 도통 받았다.
이러한 아름다움들이 현대에 들어서며 사회가 소비 중심 사회가 되면서 아름다움 보다는 내구성 없으며 휘발성이 강한 성격을 띄게 되었다. 이에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고민을 주지 않는 단순히 "와"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발가벗겨지고 세상에서 이야기 하는 가치들에 대립되지 않는 "매끄러움"을 미라고 추구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과연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인가?하고 묻고 있다.
그는 책을 마무리 지으며 내러티브가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고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미는 내적화해이며, 소비되고 휘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래도 관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병철의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아름다움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대입하게 된다.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 우리는 우리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다. 나와 경제 생활이 맞고, 지식수준이 맞고, 내가 원하는 외모를 갖춘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매끄럽지 못한 관계에 봉착하면 그 관계를 포기하게 된다. 내가 그 사람을 소유하려 하고 타자를 타자로써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내 남편이 될 만한 사람 내 아내가 될만한 사람을 고르는 과정은 내 집에 어울릴만한 예술품을 고르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택한 감시 「투명사회」: https://brunch.co.kr/@hogeunyum/20
왜 나는 사랑을 시작하지 못할까? 「에로스의 종말」: https://brunch.co.kr/@hogeunyum/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