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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Feb 15. 2018

각기 다른 과거와의 갈등 해결「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다시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처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였다. (관련 리뷰: https://brunch.co.kr/@hogeunyum/14)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는 군대에 있었다.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를 겪었던 나의 마음을 위로해준 책이었다. 그 이후에 읽은 책은 「해변의 카프카」였다. (관련 리뷰: https://brunch.co.kr/@hogeunyum/24) 그런데 두 번째 책은 너무 별로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주인공이 그것을 깨어나가는 모습이 성장소설이구나라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 해결방법은 나에게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 하루키의 책은 나의 구매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2017년 겨울, 태국으로 선교를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 더 이상 잠이 모자라지 않은 그때, 동료가 가져온 책이 눈에 들었다. 「노르웨이의 숲」. 하루키의 책이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 책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하루키를 찬찬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야설 작가?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읽고 나서 책에 대한 궁금점이 생겼다. 사람들은 이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다. 이 책은 군대에 있는 진중문고에서 인기 많은 책이라는 글이 있었다. 그 이유로는 책의 반이 섹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글을 읽어보니,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섹스이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에서 섹스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표현을 해놓았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읽다 보면, 굳이 이 장면을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소설보다는 야설에 가까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작가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내가 받았던 위로와 감동을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하기에는 꺼림칙한 마음이 있었다. 


줄거리

영화 상실의 시대 중 한 장면

주인공 와타나베의 고등학교 동창인 기즈키가 자살을 한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그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 함께 자주 어울리곤 했다. 하지만 기즈키가 자살을 한 이후, 나오코와도 연락이 끊긴다. 이후, 와타나베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그러던 중 나오코를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난 나오코는 기즈키의 자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고, 곧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제와 해결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후, 많은 논란이 일어나는 부분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인간과 인간과의 갈등은 마치 섹스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에게만 너무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숲」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기즈키, 그리고 그의 연인인 나오코를 비롯하여 학교 선배, 룸메이트, 학교 친구, 나오코의 룸메이트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어떠한 사건을 가지고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과거와의 갈등을 해결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가령 기즈키의 죽음을 두고, 와타나베는 어느 순간 그것이 별 일이 아닌 듯이 변해있다. 하지만 나오코에게는 아직도 기즈키는 자신의 삶의 일부이다. 물론 두 명이 기즈키와 보낸 물리적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사건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각기 다른 모습이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가정이나 직위를 포기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초점을 주인공인 아닌 소설 전체로 살펴보면, 과거와의 갈등 해결방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하루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와타나베의 갈들 해결장소 도쿄

장소적인 측면에서도 이를 유추해봄직하다.  와타나베가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장소는 도쿄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에 가다 보면 기즈키의 일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나오코는 아무나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스스로를 가둔다. 물론 그곳은 치료를 위한 곳이지만 점점 더 과거의 일에 대해 빠져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도리는 서점을 팔아버리고, 아파트로 이사한다. 나가사와는 독일로 떠난다. 이런 장소들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갈등을 해결하는 등장인물들의 방법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우울

문제는 주인공이 너무 우울하다는 점이다. 별로 열정이 없는 사람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해결하는 방법들에 웃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고작해야 특공대나 미도리 정도? 하루키는 분명히 현세대(사실 이십몇 년 전이지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보고, 그것을 반영한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고자 했던 문제들은 아마도 과거와의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모습들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좀 밝게 쓸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우울하게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제시하는 인물상이 너무 우울하다는 데에서 내 성향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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