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
퇴근 후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창밖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인도를 걷는 남자가 있다. 그의 오른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져 있다. 나는 창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길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식당 안쪽의 다른 자리는 모두 4인용이라 혼자 온 나는 창문에 붙어있는 긴 테이블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산책을 나온 듯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남자는 야광 연두색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화 속에는 하얀 양말도 신었다.
남색 반바지를 입었다.
축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면 딱 어울릴 복장의 남색 티셔츠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달리지 않고 종종거리며 내 앞을 지나간다. 좀 이상한데?
처음 그 남자는 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팡이를 짚고 종종거리며 걸어갔다. 샌드위치를 먹던 나는 이 남자가 장난을 치나 싶어서 곁눈질로 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길건너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도 그 사람의 종종걸음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길 건너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게다. 뭐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앞에서 종종걸음을 걷는 남자의 반바지 사이로 보이는 다리에 약간의 흉터를 보았다. 교통사고가 났던 것일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사이로 보이는 그 남자는 얼굴과 팔은 멀쩡했다. 아마도 남자는 어떤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될 뻔하다가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남자는 재활을 하러 도로에 나와있다. 집에서 종종걸음으로 걸어봐야 지루한 것이었다. 창피를 무릅쓰고 길로 나왔다. 그래야 빠르게 재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강한 의지를 응원한다.
다시 남자가 돌아왔다. 이제는 나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종종걸음을 걷고 있다. 지팡이를 짚는 손은 자유로워 보였다. 다리만 남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뇌에서 신경이 신호를 보내는데 다리까지 전달되려면 속도가 더딘가 보다. 남자는 얼마나 답답할까. 몇 해전 남자는 이 길을 빠르게 내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고로 인해 남자는 종종걸음을 걷고 있다. 용기 내어 재활을 하는 그를 응원한다.
첫 째가 4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7세까지 운영하는 곳이라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안정적으로 보내고 나는 이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근처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는 선배와 우연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 여보세요."
"오~ 사장님, 요즘 잘 지내세요?"
"너 요즘 뭐 하니?"
"아이 어린이집 보내기 시작했어요. 저 아직 집에 있잖아요."
"그래? 그럼 우리 안경원에서 알바 좀 해라."
"알바? 그럼 어린이집 끝나기 전에 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어때?"
"어, 그 정도면 괜찮겠는데요. 일단 주 3일 정도만 해도 돼요?"
"그래, 괜찮아."
"대신 주말은 안 돼요. 저희 요즘 주말부부라 주말에는 일하기 힘들어요."
"그래? 가끔 바쁠 때만 주말에 부탁할게"
"그래요. 그럼 시작해 볼게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할 때, 엄마가 사회에 복귀하기 좋은 때이다. 하지만 앞서 지팡이를 짚고 종종걸음을 걷는 남자처럼 엄마는 발목을 잡힐 일이 많다. 그걸 이해해 주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