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니쉬해변에서 하산 2세 모스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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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시 카사블랑카에 와서 누구라도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하는 곳은 대서양 바닷가가 아닐지?
물론 카사블랑카의 자부심이자 자랑인 하산 2세 모스크도 대서양 바다 위에 둥실 떠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마침 대서양 해안을 따라 모스크를 향해 걷는 해변산책로가 있다.
카사블랑카의 코르니쉬 해변 산책로이다.
엘 행크 등대에서 하산 2세 모스크까지(약 3km쯤) 걷는 길이 아름다워
늘 현지인, 관광객 발걸음이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도 오후 한나절을 투자해 이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해질녘 붉게 물들어가는 대서양 바다와 모스크의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길.
기왕이면 좀더 오랜시간을 걷고, 머물고 싶어서 등대에서 약간 더 먼거리인
아인디합 비치(T2트램 종점)에서 출발했더니
등대를 지나 하산 2세 모스크까지 약 7km를 걸었다.
카사블랑카에 온 후로 연일 구름이 가득하더니
오늘은 반갑게 햇살이 비추고
바람도 선선한 것이 걷기에는 딱 좋은 날이다.
대서양의 짠내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우리가 머나먼 지구의 서쪽 끝에 와있구나 실감이 났다.
해변에는 현지인들이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뛰놀고, 젊은이들은 축구공을 차며 웃었다.
우리도 그 사이를 지나며 해변을 거닐었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그런 평범한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오래 함께 하다보니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듯이.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듯이.
해질 무렵, 드디어 하늘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했다.
모스크의 첨탑이 저녁 햇살 속에서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낮에 보던 그 바다와 모스크가 아니었다.
언젠가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아마 없을 테지만),
오늘의 바람과 노을빛, 그리고 카사블랑카 대서양 해변길에서 마주친,
느릿한 사람사는 풍경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일 중 하나는,
이런 시간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목적이 없어도 괜찮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