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보다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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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나왔다면 도시의 유명한 관광 명소를 찾아가
그곳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고 배우는 일은 분명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뒤, 마음에 오래 남는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리운 장면은 꼭 유명한 명소만은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가슴 깊이 남는 추억은, 잠시 마음을 쉬게 했던 한 장면,
아무 기대 없이 마주친 순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면—
바쁜 일정에 쫓기다 우연히 들어간 현지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차 한 잔속에 비친 풍경,
동네 주민처럼 슬렁슬렁 골목을 걷다 마주한 사람들의 일상,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뜻밖에 발견한 로컬 시장의 사람 사는 모습.
이런 순간들이 뜻하지 않게 마음을 물들인다.
또 어떤 날은,
유명 관광지의 비싼 입장료들(심지어 외국인 요금!)에 심기가 불편한 채
자동차와 마차, 오토바이 등이 뒤섞인 정신없고 지저분한 도로변을 지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정갈하고 아름다운, 그것도 '무료' 공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구시가 인근 '싸이버공원'이었다.
그 공간은 마치 방금 전의 복잡한 심기를 눈치 챘다는 듯,
살며시 마음을 다독이며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관광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저절로 한순간에 내려놓고 휴식하기 좋았던 곳.
그 외에도 길을 걷다보면 자그마한 공공 정원들이 종종 보였는데
시끄럽고 복잡한 도로변과 대조적으로 잘 가꾸어져 있어서
잠시 벤취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라케시의 여유로운 일상이 스미는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마음 깊이 남는 여행의 순간들은
치밀하게 계획된 일정 속에서가 아니라,
불현듯 맞닥뜨린 감성적인 찰나에 생겨나는 듯하다.
무심코 지나치며 눈길이 머문 장면 하나가,
그 도시를 추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되곤 한다.
언젠가 추억만을 먹고 사는, 깊은 노년의 시절이 온다면
그 시절에 나를 미소 짓게 해줄 많은 순간들이
마라케시 여기저기 남아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