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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18일살기(4)/마라케시

찬란한 아름다움, 바히야 궁전

by 호히부부

<히>


한낮 마라케시의 골목은

늘 뜨겁고도 낯설다.

붉은 흙벽이 햇살을 머금은 채 빛나고,

길을 걷다보면 작은 문 하나가

여행자를 멈춰 세운다.


‘바히야 궁전’.

아랍어로 '바히야'는 '빛나는 그녀',

혹은 '찬란한 아름다움'을 뜻한다.


19세기,

재상 바 아흐메드(Ba Ahmed ben Moussa)가 이 궁전을 세웠다.

그는 공식 부인 4명과 24명~30명 사이의 후궁(하렘 여인),

500여명의 시녀와 하인을 거느렸지만,

그의 마음을 온전히 차지한 단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이 바히야였다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의 가족과 후궁들을 위해 궁전을 짓고, 그 이름을 세상에 남겼다.


바히야 궁전의 정원은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분수의 물소리, 오렌지 나무의 향,

삼나무 천장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눈부셨다.

한때 그의 여인들이 그늘진 회랑을 거닐며 속삭였을 것이다.

한때 사랑받았던 한 여인의 미소가 이 벽에 남아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바히야.

이름 하나에 담긴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그녀의 이름이 궁전이 되었듯,

오랜 세월 속에서도 찬란한 아름다움이 빛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 마음 한가운데 씁쓸함을 떨칠 수는 없다.

결국 바히야 궁전은 모로코 건축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 이면에,

한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지배하고 거느리던 사적인 공간,

권력과 불평등의 기억이 공존하는 공간이 아닌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궁전 회랑에 서 있노라니

바히야가 어떤 여성이었을까..

더욱 궁금해지지만 바히야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재상 바 아흐메드 뒤에서 이름만 남아 있을 뿐,

그녀의 삶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소박한 바히야 궁전 입구 (입장료100디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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