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부터 채우자
<히>
모처럼 이국적인 북아프리카 땅, 모로코에 왔지만,
구경 다니기에 앞서 18일동안 숙식을 어떻게 해결할 지가 시급하다.
숙소는 며칠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느닷없는 일정변경으로 워낙 정신없는 가운데
(그간 한달살기중에 최단시간인) 하룻만에 에어비앤비에서 아파트를 구했다.
성공적인 여행의 첫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숙소의 위치를
전통적인 구시가쪽으로 할지, 조용한 신시가쪽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한달살기 여행스타일대로
구시가 광장까지 도보로 20여분 쯤 걸리는(구시가 광장에서 멀어질수록 같은 조건에도 가격은 좀 싸지는 듯)
신시가 구엘리즈(Gueliz)지역 아파트로 정했다.
마침 숙소에서 10여분 거리에 까르푸가 있다.
마라케시에서 가장 대표 명소라고 하는 제마 엘 프나 광장에 빨리 가보고 싶지만,
일단 텅텅 비어 있는 숙소냉장고부터 채워야 하므로 마트로 향했다.
어쩌랴, 언제 어디서고 먹고 자는 문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의 나이를 살고 있으니.
(하긴 나도 한때는 밥 안먹어도, 잠 안자도 마냥 좋은 갬성 충만한 시절이 있었겠지?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도시에서, 강렬한 긴장과 호기심 사이에서
첫 장보기는 의외의 신선한 활력을 주는 느낌이다.
안통하는 언어로 현지 시장의 물가를 어림짐작하며
성공적인 장보기를 마치고나면 마음에 포만감이 인다.
새로운 나라, 사람들 삶에 한걸음 가까이 들어간 기분도 들면서.
이제 냉장고는 조금 채워졌으니 마음도 그만큼 안정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상 어디라도 '사는일'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마라케시가 어제보다 더 친근해진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