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멈추게 한 풍경들
(2024/12월~2025/1월)
[히]
라오스 한달살기를 떠나와서 루앙프라방에서만 18일간을 보내는 동안
매일같이 외곽에 있는 숙소에서 남칸 강 철교를 지나 시내중심까지 (편도 약 30여분) 걸어다녔는데
비록 길에서 스치는 순간이나마 천년의 고도 루앙프라방과
그 안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라오인들의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이 컸다.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에 숙소가 있으니 거의 관광객들로 가득한 시내에 비해
확실히 라오인들의 실생활 모습을 접하기가 좋았다.
매캐한 길거리 한가운데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달픈 하루의 삶을
성실히, 온순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거리, 오토바이들의 소음, 뿌연 매연 등
언뜻 보기에는 여느 동남아 도시들과 그리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지만
그럼에도 루앙프라방의 도시가 주는 독특한 매력이
하루하루 걸은 시간만큼이나 점점 생겨났고, 빠져들었다.
메콩강 지류인 남칸 강 철교를 정신없이 오가는 오토바이의 물결과 함께,
철길에서 걷다가 바라본 유유한 강물도 마치 조용한 라오인을 닮은 듯 하다.
그런가 하면 불교국가 라오스 루앙프라방도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리 사방에 성탄 분위기가 물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탄이 다 지나가버린 어느날,
팔리지 않고 여전히 가판대에 진열된 산타 옷들이 걱정되어 물어봤다.
다행히 성탄시즌과 관계없이 겨울 동안에 계속 팔린다고 한다.
길거리에 나와 있는 옷들을 봐도 (우리 눈에는 과할 정도로ㅎㅎ)
라오스는 지금이 한겨울이긴 하다.
현지인 동네에서 (불과 18일간이었지만) 살아보니 라오인들이 참으로 흥이 많은 민족같다.
평일에도 밤이 되면 음악소리가 자주 들려오는데 주말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동네 어디에선가
흥겨운 뽕짝(?) 소리가 새벽 1시 너머까지 들려와서
결국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ㅎㅎ
다들 하루종일 애써 힘들게 잘 살아낸 후, 저녁이면 정겨운 사람들과 모여앉아
간단한 음식을 앞에 놓고 웃음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참으로 훈훈하고 따뜻하게 보였다.
뭐 행복이 따로 없는 것이다.
2024년, 12월 31일은 이곳도 송년회를 단단히 치르는 듯 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다 본 풍경인데
동네 사람들이 집 마당이나 길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송년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같이 길을 지나다니던 우리를 어느새 알아보고 친구처럼 서슴없이 마음을 열어줬다.^^
루앙프라방에서 2024년의 마지막 날,
다같이 마음 모아 "해피 뉴 이어"를 외쳤다.
하루는 루앙프라방의 축구 꿈나무들도 만났다.
새로운 나라의 도시에 가면 일부러라도 가서 보고 싶은 곳이 현지 학교인데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면 금상첨화다.ㅎㅎ
이곳은 중고등학교 입구다.
오후엔 하교하는 학생들로 늘 복잡한 거리인데,
어느날 학교 안이 시끌벅적해서 들어가봤다.
세상 어디서고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은 행복하다.
어린 아기를 보는 순간 얼굴에 저절로 흐믓한 미소가 지어지듯이
청소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꿈, 희망, 미래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며 마음이 밝아진다.
길거리에서 부모와 함께, 또는 혼자 앉아 물건이나 먹을 것을 팔고 있는 이곳 청소년을 볼 때마다
마음 무거워지곤 했는데 밝고 활기찬 학생들 표정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사원의 도시답게 크고 작은 마을 길마다 라오인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단아한 사원과,
한 풍경 안에 마치 득도라도 한 듯 태평하기만 한 멍무들,
고냥이들이 귀엽기만 했다.
이곳 라오인의 순한 눈빛을 그대로 닮은 풍경들을 사진에 담다보니
잠시 옛날로 돌아가 시간이 정지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루앙프라방 길을 걷다보면 땅에 떨어져 있는 여리디 여린 하얀 꽃잎파리를 보곤 했다.
알고보니 바로 라오스 국화 '독참파'였다.
붉은색, 노란색, 흰색 꽃 중에 주로 흰색 꽃을 봤는데,
향을 맡아보니 은은하고 순수한 꽃향기마저 라오인을 닮았다.
하루는 길에서 맑디 맑은 표정과 눈빛이
마치 라오스 국화 독참파를 닮은 소년, 소녀를 만났다.
어린 나이에 고달픈 하루를 살아내는 어린이들이지만 미소가 너무나 밝고 눈부셨던
메콩강 소년과, 바나나 소녀였다.
라오스의 희망이자 미래로 오래 기억에 남을 모습이다.
(2024/12월~25/1월, '라오스 한달살기' 중에 가족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는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루앙프라방의 민족은 라오스의 60%를 차지하는
저지대 라오족인 라오룸(Lao Loum) 족인데
옛왕의 수도였기 때문에 유교적 영향과 예절을 중시하고,
전통과 종교의식이 강한 보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라오인들은
갈등을 피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선호하며 타인을 배려할 뿐 아니라,
'업(karma)'과 '인내'를 중요하게 여기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빠이빠이(ໄປໆ)’ 문화처럼 느긋하고 재촉하지 않아 시간 개념이 여유롭다고 합니다.
이런 때문인지 라오스의 길거리에서 만난 강아지들도
라오인들을 닮아 우리 눈에는 느릿느릿하고 순둥이처럼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