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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Ma Nov 11. 2017

(門外)버러지

꼬꼬마의 글공간


벌레.. 버러지..

밝은 빛을 보기 위해 커튼을 걷어냈다.
날은 좋지 않았다. 제기랄 오랜만에 보고 싶던 밝은 빛은 유난히 보고 싶을 때 피해 간다.
죽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죽자. 중얼거리며 부엌으로가 칼을 들었다.
손목에 쇠붙이가 닿자 차가웠다. 천천히 칼날을 움직이며 힘을 주자 손목에 붉은 피가 가늘게 흘러내렸다.
귀찮다..
금세 질려버렸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도 모두 귀찮다.
휴대폰이 울렸다.


자주 카페에 갔다. 인간관계가 안좋았었던 탓인지 친구는 없는 것 같다. 다만 가진 돈과 블로그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몇 년이나 집에 처박혀 있다가 문득 빛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부터 가끔씩 집 앞에 있는 카페에 나왔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다. 몇 년 전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끊은 그 몇 년 전 집에 들어오면서는 보지 못했던 카페였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고 자리에 앉아 별다른 행위는 하지 않았다. 연기가 모락모락 일렁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향기를 맡았다.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커피가 식어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을 때까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자세를 몇 번 바꾼 것 외에는 딱히 무어라 할 수 있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그날도 카페에 들어가 매번 했던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왔다.
-저기 혹시 혼자 오셨으면 여기 앉아도 될까요?
그녀를 올려다보고 카페를 쭉 훑어보았다. 비어있는 자리는 많았다. 답변하지 않고 그저 해왔던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녀는 더 이상 허락을 구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마주 앉았다.
대화는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서 커피의 향을 덮을 만큼의 향기가 났다. 우리는 매번 같은 짓을 반복했다. 하던 대로 어김없이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있을 때면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어디선가 나타나 마주 앉았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살아야 되는 이유도 필요 없었고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필요 없었다. 이곳에 이러한 형태로 목숨이라고 말하는 것이 붙어 있었고 사는 행위도 죽는 행위도 그저 귀찮은 똑같은 행위였을 뿐이였다. 일부러 죽으려고 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살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의미는 없었다 오히려 의미가 있었다면 귀찮았을 것이다. 갑자기 왜 밝은 빛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줄기의 빛이 구원의 손길이 되어줄리도 없고 구원의 손길을 바라지도 않았다.
애초에 구원이 필요한 인간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보고 싶었다.
밝은 햇빛이.. 별다른 건 없었다. 그냥 단순한 불빛이였고 그것에는 행복도, 구원도, 신도, 불행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손을 뻗어왔다.

그 순간 손목이 붉은색으로 흥건히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유독 칼날이 깊이 들어갔는지 붕대를 전부다 붉게 적시고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나의 손목을 움켜쥔 채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사람이 몇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녀는 한참 동안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상처가 어느 정도 진정될 때쯤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는 무덤덤했을 표정을 보더니 눈물을 그치고 카페를 나갔다.


부모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밝게 웃으며 바라봐 주던 여자는 희미하게 기억난다. 그것이 어머니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아주 따듯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이러한 형태로 있었다. 집세를 내지는 않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아마 이 집의 주인은 본인이거나 불쌍한 인간을 가여이 여기는 착한 인간일 것이다. 금전은 꽤 있었다. 장롱 속에는 꽤 많은 현금이 들어있었다. 통장에도 많은 돈이 들어있었고 그게 왜인지는 모른다. 기억상실이거나 정신병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딱히 중요하지 않다. 의미는 필요 없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밝은 빛이 보기 싫었다.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빛을 피해 시간마다 자리를 이동했다. 그러다 밖으로 나가 불빛을 막을 커튼과 도구, 먹을거리들을 잔뜩 사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항상 그래왔었다는 듯이 청결을 유지했다.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몸을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로 의뢰가 들어온 광고물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딱히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닌데 행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방안에는 항상 컴퓨터 불빛만 존재했다. 쓰레기는 어두운 새벽 문 앞에 두면 항상 어디론가 사라졌다. 필요한 물건은 항상 어두운 밤에 배송 되도록 했고 기사에게 돈을 조금 더 얹어 주었다. 사람이 그립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어떤 한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듯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였다.


그녀는 항상 얼음이 둥둥 떠있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똑같이 멍하니 있거나 휴대폰을 자주 바라보았다. 딱히 서로를 의식하는 것도 아니였고 왜 항상 마주 앉아 있는 것인지 이유도 궁금하지 않았다. 손목을 쥐며 울던 사건 후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똑같은 날들을 반복했다. 누구든 먼저 가는 것은 항상 달랐고 그녀가 가던 가지 않던 아메리카노가 식으면 한 입에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메로카노 위로 날파리가 이리저리 곡선으로 날아다녔다. 테이블에 착지하자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눌렀다. 죽지는 않았다. 살고 싶다는 듯 온몸을 힘차게 움직이며 발악하고 있었다.

버러지...
이 말에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자신과 매우 닮아 있는 것 같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와서 마주 앉았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입을 열었다.
-자주 오시네요...
답변하지 않았다. 나의 묵묵부답에 화가 났는지 얼굴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찡그리며 째려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가지는 관심은 이성적인 관심이 아닐 것이다. 아마 보호 본능 같은 단순한 감정일 것이다. 점점 귀찮아졌다. 밝은 빛을 보는 것도 매번 내 앞에 앉는 이 여자를 보는 것도 쓰기만 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도... 어쩌면 집에 처박혀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금처럼 귀찮았다는 무언의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집을 나오게 된 것도 다시 집으로 처박히려는 것도 반복이라는 것이 지겨워져서 나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녀는 묵묵부답하는 나에게 더 이상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메리카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연기는 사라지고 한 번에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레.. 버러지..

밝은 빛을 보기 위해 커튼을 걷어냈다.
날은 좋지 않았다. 제기랄 오랜만에 보고 싶던 밝은 빛은 유난히 보고 싶을 때 피해 간다.
죽을까..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죽자. 중얼거리며 부엌으로가 칼을 들었다.
손목에 쇠붙이가 닿자 차가웠다. 천천히 칼날을 움직이며 힘을 주자 손목에 붉은 피가 가늘게 흘러내렸다.
귀찮다..
금세 질려버렸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도 모두 귀찮다.
휴대폰이 울렸다.
몇 주를 방 안에서 처박혀 있었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휴대폰은 한참을 36화음으로 울려대다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울려대기 시작했다. 부모도 친구도 없는데 지인에게서 전화가 올 리가 없었다. 컴퓨터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 의뢰가 들어온 광고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또다시 휴대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살짝 짜증이 올라와 전원을 꺼버리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하자 배가 고팠고 참치 통조림을 찾으려 뒤척이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알리 없는 남자는 문을 새게 두드리며 큰소리를 쳤다.
-안에 사람 계십니까 구급대원입니다!
강도인지 진짜로 구급대원인지 그다지 알 필요는 없었지만 문 밖의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리며 큰소리를 쳤다.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대답이 없으시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귀찮다 귀찮다 귀찮다 귀찮다고 되뇌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나의 퀭한 표정 때문인지 누군가 잘못 신고해서인지 아파야 될 사람이 멀쩡하게 기어 나와서 인지는 몰라도 주황색 차림의 구급대원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주 크게 귀찮을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자 구급대원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여자분인지 애인분인지 하시는 분이 연락이 오랫동안 두절돼있다고 다급하게 신고를...
말을 다 듣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다른 휴대폰에서 여러번 걸려온 번호가 보였다. 귀찮다.. 전원을 꺼버렸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떠도 캄캄한 어둠은 계속된다. 커튼을 걷어내지 않으면 지금 해가 떠있는지 달이 떠있는지 알 수 없다. 시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것인지 뜨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카페는 한적했다. 구석자리에 커플처럼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고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반대편 구석자리에 앉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향기를 맡았다. 커피의 향을 깊게 들이마시자 보이지 않는 손이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영혼이라고 해야 할지 하는 어떠한 몸속 깊은 것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그녀가 떠올랐다.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 적은 없지만 사진의 아웃포커스 부분처럼 희미하게 형태만 생각났다.
한달만에 나온 세상은 똑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카페도 마시던 아메리카노의 맛도 자신도 그리고 어김없이 얼음이 띄워져 있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앞에 앉는 그녀도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아메리카노를 한 입에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컴퓨터가 올려져 있는 책상의 서랍을 열자 액자가 보였다. 자신과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아무 감정도 따듯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액자 옆에 편지들이 있었다. 확인하지 않고 서랍을 닫았다. 분명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은 맞지만 딱히 느껴지는 감정이 없으니 굳이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페를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자 항상 앉던 자리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굳이 그 자리로 가지 않고 커피를 들고 반대편 구석자리로 앉았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 뒤로 검은 음영이 지더니 그녀가 탁자에 잔을 쌔게 내려놓으며 마주 앉았다. 신경 쓰지 않고 멍하니 있자 새한 느낌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삐진 듯하면서도 슬픈듯하면서도 아픈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왜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데...
내가 처음으로 땐 첫 마디였다. 그녀의 눈은 금세 물기로 가득 차더니 얼굴을 가리며 밖으로 나갔다. 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커피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다 사라져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가슴 쪽이 아팠다. 심리적 혼란은 없지만 가슴 쪽을 누군가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두어 시간을 더 멍하니 있고 난 후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서랍을 열어 액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사진 속 밝게 웃는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 쪽이 왜 아팠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건강상에 문제였던 것인지 이제 와서 감정이 느껴지려 하는 것인지 자신이 그녀의 눈빛에 동요했다는 것은 사실이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계속 포기하지 않고 두드렸다. 문의 작은 렌즈에 그녀가 보였다. 무표정으로 계속 문을 두드렸고 한참 뒤에야 문을 열어주었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고 의문도 인사도 아무런 말도 서로 하지 않고 그녀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서랍을 여기저기 뒤지며 무언가들을 꺼내 방 가운데에 던져놓았다.
사진들, 편지, 신문 스크랩들, 병원 진단서, 보험 회사의 서류 그리고 장롱에 있는 현금까지 모두 던져 놓으며 소리쳤다.
-봐! 보라고! 왜 안보는건데 나는 보이긴 해?
무덤덤하게 흩어져 있는 것들을 훑어보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진, 연인으로 보이는 사진 그리고 신문 스크랩들, 억울함에 투신자살시도, 부부 뺑소니 교통사고 즉사, 자식 보험 사기 의심, 검찰 사건 진상 재규명, 범인 여전히 오리무중, 억울함 풀렸지만 여전히 혼수상태, 사회가 죽인 영혼 누가 구원할 것인가.
그녀는 나를 껴안으며 말했다.
-그만하자... 제발...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기억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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