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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26. 2020

캐나다에서 출산하기(를 옆에서 지켜보기) - 7

진통의 시작

와이프가 벌써 세 번째 출산을 하는 것이지만 부끄럽게도 그동안 진통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첫째를 낳았을 때는 내가 지방에 일을 하고 있었던 관계로 처음 진통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진통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회사에 이야기를 한 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와이프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무통주사를 맞은 이후여서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곧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되었고 그야말로 완전 난리 그 자체였다. 한참 난리가 일어나고 있는 중간에 간호사가 남편은 밖으로 나가라고 해서 우선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밖에서 나가서 양쪽 부모님들과 함께 언제 아기가 나오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난리 끝에 출산을 마치고 나서야 내가 들어가도 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시 들어가 보니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정신이 없었다. 나보고 탯줄을 잘라 보라고 해서 가위를 가지고 잘랐는데 탯줄이 참 안 잘렸다(어쩌다 보니 가위를 왼손으로 잡게 되어서 더 안 잘렸다).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그냥 의사 선생님이 탯줄을 잘랐다. 


둘째의 경우 와이프의 진통이 시작된 것이 하필이면 내가 교육을 위해서 토론토에 가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새 직장에 나간 지 겨우 3일째 되는 날이라 본사가 있는 토론토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를 낳고 새직장에 나가려고 했는데 한 두 주를 기다려도 별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먼저 교육을 끝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교육을 가게 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교육에 가자마자 진통이 온 것이다. 


밤 12시 정도에 진통이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는 호텔에서 짐을 챙겨서 바로 킹스턴으로 향했다. 한 밤 중이라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2시간 정도 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통주사를 맞은 이후여서 와이프는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나중에 당시 상황을 들어 보니 전혀 그렇게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자 진통이 시작되었는데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기 시작할 때쯤 와이프가 딸 녀석과 장모님을 차에 태우고 진통을 참아가면서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갔던 것이었다(장모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현지에서는 운전을 하실 수 없으셨음). 운전하는 중간 몇 번의 진통이 와서 아주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처음에 병원에 도착을 했을 때 간호사가 상태를 확인하고는 진통 간격이 더 짧아지면 오라고 우선 집으로 가라고 했단다. 그런데 와이프가 직접 운전을 해서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절대 운전을 해서는 안된다며 한 두 시간 정도 병원 안을 계속 걸어 다니라고 했다. 와이프는 병원을 걸은 지 20~30분도 안되어서 진통이 짧아졌고 곧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첫째와 둘째의 출산 과정에서 진통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 주지 못하여서 와이프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행히도(?) 드디어 진통의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출산 전 마지막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이 48시간 이내에 출산을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진료를 본 다음날 진통이 오지 않을까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진료를 본 다음날은 목요일이었는데 목요일에는 항상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검사를 가야 했다. 그래서 만약에 내가 일하러 간 사이에 진통이 시작되기라도 한다면 이번에도 또 진통을 옆에서 못 지켜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날은 진통 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금요일에는 보통 검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언제 진통이 시작되어도 바로 집으로 가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런데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지나도록 진통이 시작되지 않아서 혹시 이날도 안 나오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출산이 임박함을 느낀 와이프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이들과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다. 


마지막 불꽃이 다시 활활 타올랐던 것일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아니나 다를까 48시간이 지나기 전인 금요일 저녁에 와이프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출산을 향한 우리의 열정!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라!! 진통을 위해 첫째 때는 아파트 계단을 올랐고, 둘째 때는 시소를 탔고, 셋째 때는 탱탱볼을 탔다!!


잠을 자는 중간에 와이프가 처음 진통을 느끼고 시간을 재 보자 처음에는 7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다. 계속 진통이 되는지를 보기 위해서 조금 기다리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서도 주기적으로 진통이 왔다. 셋째는 진통의 간격이 빨리 줄어든다고 하여 곧바로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이번에는 첫째 둘째 때와는 달리 진통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처음 진통이 시작된 지 1~2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5분 이하의 간격으로 진통이 오는 것이었다. 금요일 밤이라 차도 그리 막히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병원까지 가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무사히 병원에 도착해서 분만실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진통이 있어서 왔다고 하자 잠시 상태를 확인해 보고는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분만실로 갔는데 마침 우리를 담당할 간호사가 지난번 둘째 출산 때도 담당했던 간호사였다. 우리가 지난번 둘째 출산 때에도 당신이 들어왔었다고 하니 간호사도 신기해하면서 기억이 나는 것 같다고 하였다(이곳에 동양인이 적긴 하니까). 


간호사가 진통은 어떻게 하고 싶냐는 식으로 질문을 하였다(한국말로 쓰니 질문이 약간 이상하긴 하다). 와이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에피듀럴(Epidural, 진통제)'을 맞겠다고 하였다. 간호사는 알겠다며 의사를 불러주겠다고 하였다. 20~30분 후 마취과 의사가 들어와서 이것저것을 확인하고는 앉은 상태에서 등에 주사를 놓아주었다(이것을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던 경험으로는 누워서 새우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맞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무통주사를 맞고 나니 내가 첫째와 둘째 때 병원에 도착한 바로 그때 그 상황이 되었다. 즉 갑자기 폭풍우가 지나가고 잠시 조용해진 그런 시기가 된 것이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어느새 밤 12시를 지나있었다. 



무통주사를 맞기 전과 후. 놀라운 차이가 있다.



간호사는 우리에게 한 시간 정도 쉬라면서 밖으로 나갔고 간호사가 자리를 떠나자 나는 갑자기 엄청난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와이프는 입원할 때 필요한 물건들이 빠지지 않도록 이것저것 챙겨서 가방을 잘 쌌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진통 과정과 입원 과정에 대해서는 초보이다 보니 비상식량이라는 매우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내 가방 속에 운전할 때 집어먹던 초콜릿이 조금 남아있어서 그것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만약 넷째를 낳게 된다면 반드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야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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