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Sep 27. 2020

캐나다에서 출산하기(를 옆에서 지켜보기) - 8

새로운 멤버의 등장

무통주사를 맞은 이후에는 언제 진통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 쉬다가 1시간 반 정도 후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서 상황을 보고는 이제 바로 출산에 들어가자며 의사를 호출하겠다고 하였다. 


캐나다의 다른 지역에서 출산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출산할 때 분만실에 들어오는 의사는 그날 당직을 서고 있었던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킹스턴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OB 닥터(Obstetrician, 산부인과 의사)가 직접 아이를 받아 준다. 우리를 담당했던 간호사 말에 따르면 우리 OB 닥터는 심지어 '99% 이상자기가 맡은 환자의 분만실에 들어간다고 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만실에 들어 가나 보다.


이런 시스템은 임신 과정 중 이런저런 특이사항이 있었던 임산부들에게는 특히 좋은 시스템인 것 같다. 의사가 임산부를 계속 지켜보았으니 임신 기간 동안 발생했던 문제나 우려 사항을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출산 과정에서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가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시스템이 의사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 같다. 분만은 낮이건 밤이건, 평일이건 주말이건 예고 없이 진행될 텐데 어떻게 언제나 담당 의사가 직접 아이를 받아 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과연 휴가는 제때 갈 수 있나 궁금하다. 휴가는 둘째 치고라도 본인의 가정생활과 건강은 잘 챙길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이다. 심지어 와이프가 출산할 당시 우리 OB 닥터는 본인이 임신 중인 상태였으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킹스턴으로 처음 이사 와서 둘째를 출산했을 때도 우리를 진료했던 OB 닥터가 분만을 진행하였다. 당시에는 마침 우리 의사 선생님이 당직이었나 보다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비록 두 번 정도 진료를 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자기 환자가 출산을 하니 그 선생님이 한 밤 중에 분만실로 나온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의 OB 닥터가 분만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번의 진통이 지나간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고 나서 곧 한 번 더 진통이 지나갔는데 놀랍게도 벌써 머리가 보인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말 셋째는 분만 과정이 빠르긴 빨랐다. 더 놀랍게도 그다음 진통이 오자 바로 아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빠른 분만은 오히려 산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약간 힘을 빼라고 하였다. 나는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셋째는 이렇게 진행이 빠르니 진통이 시작되자마자 병원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가끔 뉴스에서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출산이 완료되었고(진통을 했던 와이프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둘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탯줄을 자르기 전에 아이를 한참 엄마 배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탯줄을 잘랐는데 이제는 나도 어느새 베테랑이 다 되어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정신없이 잘랐던 지난번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탯줄을 자르면서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셋째 녀석의 탯줄을 보고 있으려니 첫째를 출산했을 때 내가 잘 자르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탯줄이라는 것이 이렇게 굵은지 몰랐는데 굵기가 내 엄지손가락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이것이 약간 반투명해서 그 안에 핏줄이 아주 잘 보였다. 우리 셋째 녀석은 단일 제대 동맥이었기 때문에 까만 핏줄이 두 개가 보였다(동맥 하나, 정맥 하나). 탯줄이 이렇게 굵은 데다가 그 속에 있는 핏줄이 이렇게 잘 보이니 초음파 검사를 하면 단일 제대 동맥인지 쉽게 알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단일 제대 동맥이 나만 신기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출산을 했던 KGH(Kingston General Hospital)에서는 진료를 볼 때 의대생이나 레지던트가 함께 들어오는데 분만실에 들어온 레지던트가 내가 자른 탯줄을 치우면서 아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요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단일 제대 동맥이 아주 흔한 것은 아닐 테니 우리 와이프가 레지던트에게 참교육을 시켜주었다는 생각에 혼자서 뿌듯했다. 



탯줄을 자르고 나서 몸무게를 쟀는데 2.72kg였다. 몸무게가 적은 편이었지만 다행히 우려가 될 만큼 적지는 않았다. 사실 둘째는 출산 당시 2.74kg였는데 남자아이였기 때문에 퇴원할 때까지 계속 피를 뽑아서 당 수치(Sugar Level)를 검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셋째는 둘째보다도 몸무게가 적게 태어났지만 여자 아이이기 때문에 당 검사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몸무게 인증샷을 찍는 셋째 녀석




그렇고 출산의 모든 과정 마무리가 되었고 셋째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만 조용히 시간을 보내라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출산하자마자 간호사들이 아이를 데려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셋이서 조금이나마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오붓한 시간도 잠시, 출산 전부터 배가 고팠던 나는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힘든 출산의 과정을 거친 와이프에게 먹을 것을 챙겨 준다는 핑계로 탕비실로 가서 환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내서 먹었다. 


남몰래 배고픔을 달래고 나니 간호사가 들어와서 곧 병실을 옮길 테니 와이프에게 괜찮으면 씻으라고 하였다. 와이프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아이는 빨리 씻기지만 산부는 잘 못 씻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반대로 아이는 퇴원하기 직전에나 씻기게 하고 산부는 바로 씻게 한다. 와이프는 무통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아직 하반신에 감각이 다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서 일단은 비틀거리면서 씻고 모두 다 함께 일반 병실로 옮겼다.


한 겨울에 출산을 해서 병원 안도 조금 추웠다. 캐나다에서는 신생아에게도 털모자가 필수이다.


지난번 둘째 출산 때에도 이야기했듯 출산 후 다인실을 쓰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다. 한국과는 달리 여기는 신생아와 함께 병실을 쓰기 때문에 한밤 중에 내 아이가 울면 남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물론 남의 아이가 울어도 시끄러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번에도 일인실은 자리가 없어서 이인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미 KGH에서 한 번 출산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우리 부부는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들어올 때부터 일인실이 있냐고 묻기를 반복하여 담당 간호사에게 우리는 정말 일인실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일인실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번에도 일인실을 배정받는 것은 무척이나 치열했다. 그래도 보통 여러 사람이 원할 경우 출산한 순서대로 일인실을 배정하는데 막상 자리가 생기니 차례를 알지 못했던 간호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일인실을 배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를 담당했던 간호사가 차례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일인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캐나다에서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요청해야 속상한 일을 당할 일이 적다. 


일인실에서 시간을 보내보니 다인실에 비해 너무나 편해서 몇 날 며칠이건 이 방에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문제가 없으면 바로바로 방을 빼주어야 한다. 다행히 산모와 셋째 모두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인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곧 퇴원을 준비해야 했다. 퇴원 준비를 하면서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셋째를 씻어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따뜻한 물로 씻겨줄 텐데 여기는 날씨도 추운데 차~암 미지근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이래도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녀석의 모든 인생이 담긴 때를 씻어줄 수 있어서 속이 다 시원했다. 아이까지 씻기고 나니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분명 우리가 방을 비우자마자 일인실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출산한 지 약 30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새로운 멤버 한 명을 추가로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전 08화 캐나다에서 출산하기(를 옆에서 지켜보기) -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