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걱정이 가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우울함이 깊이를 모르고 바닥으로 나아갔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현실 도피가 필요했다.
쓸데없는 짓으로 단순히 시간만 소비하면 현타가 오고 자책하기 때문에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해야 했다.
그때 양자 역학 같은 것도 유행했던 것 같은데, 과학 하는 팝캐스트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우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듣다 보니 불교의 세계관이 생각났다.
다중 우주, 억겁의 시간이나 세상의 구성.
물질 이라는 것이 결국 비어 있는 것...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머리에 쥐 나도록 거대한 규모와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을 얘기하는 것이 비슷했다.
외계인이나 미래인간이 과거로 가서 과학지식이 없는 인간에게 우주와 만물의 구성을 설명하려면 불교에서 얘기하는 것 처럼 하겠구나..
신기해하다가 철학하는 팝캐스트로 옮겨 갔다.
철학을 조금 하다 보면 허무주의로 빠지기 쉽다고 한다.
뭐 없다. 어차피 티끌이다.
너무너무너무 미미한 존재들이다.
이런 마당에 의미 있는 게 뭐가 있나.
그저 살면 된다.
어마어마한 세상에서 찰나의 순간을 존재하는 인간
뭐 이런 의미를 찾는 게 무의미하다.
근데 뭘 그렇게 가지려 하나.
그래서 이렇게 힘든데.
우울함에 안기는 것도 편안함인가?
계속 파고들어가며 더듬더듬 아래로 침전하던 시기.
협소한 시선이 아무것도 못 찾고 있던 시기
바닷속 깊은 바닥에 있는 느낌.
빛도 없고 수압으로 한 점이 돌 듯이 몸이 쪼그라들던 시기.
나만 초라한 게 아니라 모두가 초라한 거지.
그런 생각이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떠오르면 다시 출발선에 놓이게 된다.
남들과 동일선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이미 달려갔고 나 혼자 출발선이다.
은유가 아니라 실제적인 체력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시기의 모습을 생각하면 월세 50에서 100으로 옮기는 짓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주와 영겁의 시간 같은 걸 생각하다 보니 50만 원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한발짝 사람들이 사는 곳과 가까워졌다.
이후에도 허무주의가 필요했다. 주기적으로.
그치만 침전의 깊이가 다르다.
적자는 벗어났고 생각도 성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