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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11. 2023

하얀 고양이

우리의 친구, 아니 주인님?! - 로시니 "고양이 이중창"

"너는 고양이가 좋아? 강아지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부먹이야? 찍먹이야?", "짜장면이야?짬뽕이야?" 와 같이 선택할 수 없는 질문은 왜 하는 것일까?


"난 둘돠"라고 옛 모토로라 광고의 베컴처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지만 상대방은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만 선택해."


왜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나의 입장에선 당연히 강아지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서로 원수라고 공표한 것도 아닌데, 굳이 남의 종족일에 편을 들면서 인간끼리 파를 나누는지 모르겠다.


강아지나, 고양이나, 이제 티브이에서 더 이상 안 보이는 할리씨 말처럼 달팽이처럼 우리의 친구 아닌가?


고양이 역시 강아지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의 옆자리를 지켜온 동물이다. 저 머얼리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신격화할 정도였고, 멀리 항해를 하는 뱃사람들에겐 배 안의 식량을 훔쳐먹는 쥐를 잡기 위해 꼭 두세마리씩 같이 배를 타는 소중한 존재였다. 다소 얌체스런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주인을 알아보거나, 도와준 이에게 은혜를 꼭 갚는 상당히 영리한 머리와 예절바른 묘성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동, 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많은 집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동양화, 서양화 가리지 않고 우리 괭이들이 등장하는데,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강아지와 사뭇 다른 매력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역시 고양이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피에르 보나르의 "하얀 고양이"다. 귀엽지만 특이한 형태의 고양이를 보며 "이 것은 무엇인가?"하고 한창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사람마냥 다리가 유난히 기다랗게 그려져 시대를 앞서간 화풍처럼 보이는 이 고양이의 기괴한 형상은 나중에 인터넷의 "고양이 액체설"을 보고 다소 이해가 갔다. 아마 화가는 대단한 고양이 "러버"가 아니었을까 싶다. 살랑거리는 꼬리에 쭉 뻗은 다리, 잔뜩 움츠린 몸에 살짝 감은 눈 그리고 옆으로 눕혀진 귀까지 고양이를 한두번 시중 들어본 솜씨가 아니다. 프로 집사다!


특유의 프랑스인다운 화사한 색채, 상상력과 재치가 독보이는 구성, 그리고 가족, 친구 그리고 일상의 소재를 서정적으로 그려낸 인상주의파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젊은 후기 인상파 화가 그룹에 속해있었는데, 재밌게도 그 그룹의 이름은 "나비(Les Nabis)"였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저기 멀고 먼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 고양이의 별칭이 "나비"라는 걸 알았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양 뺨 가득 홍조를 띄우며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양이를 사랑했던 건 음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사의 앞페이지에 나오는 스카를랏티부터 시작하여, 모차르트, 라벨, 롯시니 그리고 현대의 미국 작곡가 르로이 앤더슨까지 다양한 "냥집사"들이 고양이에 대한 곡을 남겼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던 시절에는 인간들은 다소 잔인한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찾았다. 인권이나, 동물권이란 개념도 없었고, 노예도 있던 시절이니 동물들의 학대는 쉽게 이루어졌다. 돈 많은 귀족쯤 되야 집안에 음악가도 두고 책도 읽고 무도회를 가며 스트레스를 풀었겠지만 까막눈 서민들이야 쉽게 구할 수 있는 말 못하는 동물들이 오락거리였다.  


16~17세기에 흥행한 "고양이 음악회"는 바로 이러한 서민들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고통에 찬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익살스러운 것으로 여겼는데, 이런 발상으로 만들어진 여러 도구들이 있었다. 대여섯마리의 고양이들을 구멍 뚫린 상자에 집어넣고 구멍으로 나오는 꼬리를 잡아당기거나, 고양이 꼬리에 못이 달린 키보드를 연결한 피아노등이 그런 것인데, 소리 자체보다는 소리가 만들어 내는 화음을 중시하는 다소 괴이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생각나는 도구들로 이루어진 음악회 또는 볼거리였다.


그렇게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만들어 내는 화음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롯시니의 "고양이 이중창" - 로시니의 오페라 "오텔로"에서 멜로디를 따와 로버트 루카스 드 피어솔이라는 성악가가 편집했다는 썰이 유력함-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화성을 만들어가며 전개되는 재밌는 곡이다.


주로 여성 솔리스트나 어린 아이 솔리스트 두명이 나와 코믹하게 경쟁적으로 고양이를 누가 더 잘 흉내내나 보여주데, 엄숙한 콘서트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다.(곡의 특성상, 남자 솔리스트들이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토마스 햄슨과 브라이언 터펠이 바르비에 콘서트에서 대단히 용감한 시도를 하셨다...). 곡이 전개되면서 야옹거리는 두 솔리스트, 아니 두 고양이의 신경전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재밌는 점은 대사도 없이 고양이 소리로만 이루어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초반의 히스테릭하면서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가 나중엔 유쾌하게 마무리되는데, 변화무쌍한 고양이들의 놀이를 보는 기분이다.


강아지, 고양이...말도 안 통하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누구보다도 큰 위로가 되는 털복숭이 친구들 덕분에 우리 인간의 일상뿐 아니라 예술세계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워진게 아닐까 싶다. 사람만 존재하는 세상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음이 쉽게 변하는 이기적인 인간들 대신 어떠한 댓가도 없이 변함없는 무한한 애정을 주는 이 소중하고 귀여운 친구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그래서 난 털이 달린 친구들 모두 공평하게 좋다. 난 둘돠~아니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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