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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HOOP 리슙 Mar 31. 2023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초반에 실린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를 읽으며 아차 싶었다. 결여가 불쑥 튀어나올 줄이야. 런데 사실 결여는 원래부터 쭉 거기 있었다. 한 번도 없던 적이 없다. 다만 나는 여가 결점인 줄 알고 숨기 살아왔기에 갑작스레 유약하고 볼품없는 나를 들킨 기분이었다. 괜히 읽었다 싶을 정도로 급격히 침울해졌다. 그래도 책 값이 아까워 다시 꾹 참고 페이지를 넘겼다. 이번에는 책을 보길 잘했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상했다. 논리적인데 차갑지 않았다. 좋은 소리만 하지 않는데 좋게 들렸다. 그렇게 책을 읽는 동안 침울과 안도 사이를 오가며 요동치고 다시 잠잠해지기를 여러 번. 몸속에 무언가 울컹 일렁였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조수간만의 차가 . 발은 물살을 신고 있느라 잘 보이지 않았온도는 간간히 느낄 수 있었다.  했다.




모든 해석자는 '더'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좋은 해석을 꿈꾼다. 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에서 얻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다.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책머리 중에서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던 신형철 평론가는 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란 제목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독자인 나는 그 덕분에 정확한 꿈을 얻게 되었.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해받고 다는 꿈을.


그가 기하는 '모든 해석자' 다. 내게 '해석자'라는 현은 씬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들. 사명감마저 다. 일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해석자 해석자의  평생 해야  거 아닐까. 평가가 아닌 해석을 말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은 결과만 보고 지는 평가에 치중다. 았는지, 틀렸는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오직 둘 중 하나만 신경썼다. 가장 가혹한 평가 대상은 나였고 그다음은 가족이었다. 평가보다 해석이 먼저였어야 했는데. 그다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 덜 미워하고 덜 상처 주고, 이해하고 더 사랑했을 이다.


평가는 애정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해석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애정과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어야 가능하다. 해석하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미움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마귀를 싫어하는데 어떻게 관찰할 마음이 들겠는가. 해석이 시작되는 곳은 험해질래야 험해질 수 없다.


해석은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표현이다. 공원에 서있는 나무도, 마음속에 담아둔 그리움표현 그 자체이다. 이렇게 없는 표현을 장으는 글쓰기가 나에게는 곧 해석다. 




해석은 인식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창조이고, 정답과 오답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이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그러면 '더 좋은 해석'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 때 모든 걸 완전히 알 수는 없더라도, 알고 있는 것만큼은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더 좋은 해석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에 나는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부드럽고 신중하게, 제대로 기억하고 인식하기 위해서. '그때 그랬었죠?', '아마 ○○○였던 거 같은데, 혹시 제가 기억하는 게 맞나요?'. 아는 척 말고 는 것을 건네면서 해석듬을 것이다. 사랑할수록 기억은 구체적이고 태도는 섬세해진다. 아니다. 사랑하려면 구체적이고 섬세해져야 한다.

내게도 정확한 해석을 건네준 이들이 있다. 군가의 입으로 생전 처음 들어봤던 말임에도 무반가웠던 그 말들. 잃어버린 것조차 잊고 있었던 퍼즐 한 조각처럼 꼭 들어맞는 말과 태도를 해주었사람들을 기억한다. 그중에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이도 있지만 그가 했던 말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쉰다. 해석이 정확할수록 의 존재는 선명해진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내게 친구가 건넨 잊지 못할 편지.



기에 나는 퇴고하고 또 퇴고 것이다. 잘 알려진 문장'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 본받아. 당신이 자세히 보일 때까지 내 눈과 마음을 닦다. 그렇게 나는 당신과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거울이 되고 싶다. 신도 나를 통해 스스로가 잘 보인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살아있는 당신이 그저 고맙다. 당신 덕에 나는 오늘도 '가장 좋은 해석' 꿈꾼다.



2019~2020 혹독했던 시기에 나를 이해해주던 이상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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