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통 프로젝트

by JUNE HOLIDAY


나는 치약이나 연고를 쓰다가 여자친구에게 혼난 경험이 종종 있다. 튜브 끝부분부터 말끔하게 내용물을 짜내지 않은 탓이다. 몇 번 혼난 후부터는 의식적으로 튜브 구석에서부터 말끔하게 치약이나 연고 등을 짜내려고 하지만, 꼭 아무 생각 없이 그것들을 짤 때만 여자친구의 눈에 띄게 된다. 사실 혼나도 별다르게 할 말은 없다. 삐쩍 말라 다 쓴 것 같은 치약일지라도 끝에서부터 꾹꾹 짜내다 보면 양치 한 두 번은 더 할 수 있을 정도의 치약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현명하고 알뜰한 여자친구도 온전히 다 쓰기 어려운 것이 있었는데 바로 ‘샴푸’였다.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수명을 다 해 샴푸보다 거품이 더 많이 나오는 샴푸통을 본 경험. 그리고 그 샴푸통을 열어 탁, 탁 샴푸를 털어내거나 혹은 그 안에 물을 넣고 섞어 짜낸 경험. 한 번 정도는 겪어봤을 것이다. 다 쓰지 못한 샴푸, 덩치 큰 샴푸통과 펌프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간단한 아이디어로 샴푸통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샴푸를 끝까지 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뚜껑’이 대표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펌프형 샴푸의 펌프는 일종의 ‘빨대’이다. 다만 용기 주둥이에 빨대가 고정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바닥이나 벽면에 남아 있는 내용물을 내 마음대로 빨아들이기 쉽지 않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내용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잔을 기울이고 빨대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남은 커피를 쪽쪽 빨아 마신다. 하지만 샴푸통의 빨대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남은 샴푸를 쓰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펌프를 없애는 방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치약이나 연고의 튜브처럼 샴푸를 만든다면 나는 여자친구에게 혼날 일이 하나 늘어나겠지만 적어도 샴푸는 알뜰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물기가 많은 욕실에서 튜브형 샴푸가 쓰러질 것이 걱정된다면 소스통처럼 생긴 튜브 디자인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카페에서 각종 소스를 소분해 놓을 때 쓰는 통 말이다. 둘 중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튜브형으로 샴푸를 만들면 샴푸를 끝까지 쓰기도 수월해질 것이고 펌프형 뚜껑을 만들지 않아도 돼 자원 및 비용도 절감되지 않을까?


만약 지금의 펌프형 샴푸통을 유지해야 한다면 샴푸통을 투명하게 만든다면 어떨까? 샴푸통 안이 보이지 않으면 내용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에이, 이 정도면 쓸 만큼 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육안으로 밑바닥 및 벽면에 남아 있는 샴푸를 확인할 수 있다면 아까운 마음에 조금 더 말끔하게 샴푸를 짜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잠깐 멍을 때리며 해본 생각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창의적인 것은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구글에 ‘친환경 샴푸통’ 혹은 ‘eco friendly shampoo’라고 검색해 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디자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단한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자그마한 디자인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환경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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