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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몽 Sep 25. 2023

본격적인 준비 시작

제주 한달살기 집 임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다.  

"자, 바로 이 집이야"


 식구들과 북적북적 다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공항 도착해서 스타렉스 12인승 대형 차량을 빌려 다 같이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나 말고 나머지 식구들에게는 그야말로 상상도 힘든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그날.

 그날 하루의 여정은 내 인생에서도 손꼽히게 들뜨고 특별한 날로 남아있다.


 여느 여행과는 달랐다.

 우리는 (사실 이미 "집 값"이라는 매우 큰 비용을 지불했지만) 숙소 비용이 안 든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우리가 가서 6일 동안 지낼 집이 남의 집이 아닌 "우리 소유"라는 데 흥분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름대로 집 마당의 풀들을 제거하고, 집을 청소할 계획에 머릿속이 분주했다.

 나와 친오빠는 아이들을 돌보기 바빴고, 나는 나름대로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시간표를 만들었다.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필요한 물건들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내가 도착하는 날에 맞추어 미리 도착하게끔 여러 가지 물건들은 미리 배송시켜 두었다. 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주문하면 내가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에 물건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계획을 잘 세워야 했다.




 몇 주 전 나 혼자 지나갔던 그 길을 식구들과 함께 달려갔다.   


 다시 땅거미가 내리고, 도시에서와 달리 사방을 밝혀주는 불빛이 거의 없는 캄캄한 제주도 서쪽 고산리의 밭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식구들은 습하고 신선하고 살짝 비린내가 섞인 바람이 휑휑 불어오는 집 앞에 모두 내렸다.

 몇 주 전에 보았던 집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제, 마침내 내 거다.


 기다리고 기다려온, 머릿 속으로 수 없이 상상했던 그 말을 드디어 내뱉었다.  

"자, 이집이야"





"오?? 생각보다 괜찮네?"

"야~ 이런 곳에 있었네. 집 귀엽다!!"

"오, 나름 마당 있어. 괜찮아."


전 주인에게 미리 들었던 비밀번호를 눌러 도어록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매우 좁을 것이라고 잔뜩 각오하고 와서인지 모두들 생각보다 넓다며 괜찮다고 탄성을 질러댔다.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가구와 가전과 물건들을 확인했다.

전 주인이 물건들을 대부분 놓고 가서, 휑한 펜션 정도의 물건들은 모두 갖추어져 있는 상태였다.

가전과 난방, 수도도 모두 빠짐없이 제대로 작동했다.


우리의 계획은, 우선 첫날 비좁고 불편한 대로 어쨌든 잠은 자야 할 테니 가자마자,

1) 바닥을 청소하고

2) 집 안에 이불을 모두 모아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엔 몇 가지 오류가 있었는데,

 일단 도시에서는 당연히 집 근처에 하나쯤은 있어야 할 "빨래방"이 근처에 없었다. 아예 고산리 마을에도 없었다. 차로 25분 정도 가야 하는 다른 마을에 있었다.


 그땐  25분쯤이야 뭐 먼 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점점 뼈저리게 느끼게 된 "제주타임"에 젖어들면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거리로 느껴지게 된다. 

(*제주타임이란, 제주도에서의 시간 감각, 거리 감각이 도시에서와 매우 다른 것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는 언제나 보통의 거리로 느껴지는데, 제주도에서의 한 시간 거리는 음... 가면 거의 하루를 다 쓰고 와야 할 먼 거리로 느껴진다. 만약 두 시간 거리면, 가서 자고 와야 할 것 같을 정도이다.)


아무튼, 그때의 우리는 첫 체험에 모두들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대충대충 바닥을 닦고, 이불을 모두 챙겨서 스타렉스를 타고 더 남쪽 모슬포항으로 향했다.


 이미 시간은 저녁 7시도 넘겼을 때였다.

빨래를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도시에서야 한참 저녁을 사 먹을 수 있는 때였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모슬포항에 도착했을 때쯤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술집만 몇 개 열려있는 정도였다. 인터넷에 표시된 영업시간을 보고 가도 실제로는 닫혀있었다.


 우리는 당황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지금 와도 된다는 백반집을 겨우 찾아내 빨래방에 빨래를 넣어놓고, 서둘러 식당으로 갔다.

 맛집을 고르기는커녕, 밥만 해결할 수 있다면 감지덕지였다.


 다행히 저녁으로 먹은 성게미역국, 고등어구이, 보말전복죽은 모두 만족스럽게 맛있었다. 가격도 도시에서 사 먹는 백반 가격과 같은데, 도시에서는 먹기 어려운 해산물들이 많이 나와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배도 부르고 뭔가 여흥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서둘러 빨래를 마쳐야 한다.


 빨래방을 별로 이용해 보지 않아서 시스템이 낯설었지만, 열심히 설명서 읽어가며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빨래가 끝난 이불들을 건조기에 옮겨 건조를 마쳤다.



 밤이 늦었다.

 보통 여행 첫날이라면, 숙소에 늘어져서 맥주도 마시고, 컵라면도 끓여 먹고 할 텐데,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생수와 청소도구, 간식과 내일 아침에 먹을 것들을 사고, 집으로 가서 이불을 정리하고 또 온 집안을 쓸고 닦았다.


 평소엔 식구들과 다 같이 원룸 같은 한 공간에서 지낼 일이 별로 없는데, 그날은 그 작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이불을 펴고, 식탁에 앉아 맥주와 안주를 먹으면서 하하 호호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거의 새벽 1시를 넘겼다. 이불을 제대로 깔고 눕지도, 덮지도 못한 채로 쪼그려 누워 잤지만,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결국엔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된 사실이 감격스러웠고, 식구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며 신에게 감사했다.



모두 함께, 페인트칠부터 시작했다.



 다음날 예정된 일정은 매우 바빴다.

 아침 일찍 나는 차를 몰고 제주도 시내로 가서, 부동산에 들러 매도인이 두고 간 서류들을 건네받고, 그날 제주공항에 도착예정인 사촌동생(페인트칠 도와달라고 불렀다.)을 픽업한 후, 제주시 등기소에 가서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신청을 하기로 했다.


 여전히 "제주타임"이 익숙지 않았던 때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일정은 그냥 평범한 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같은 일을 20번 정도 반복한 뒤에는 어지간해서는 제주시 시내로 가는 일정은 잡지 않게 된다.

 

 아무튼 부동산에 들러 순조롭게 서류를 챙겨, 또 한 명의 신나는 가족을 차에 태우고 등기소로 향했다. 제주공항으로 몰고 간 스타렉스에 사촌동생을 태우는 과정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커다란 차를 몰고 나타나 "누나 차 좀 크지? 어서 타!"


등기업무는 나도 할 줄 알았고, 제주도 입성의 경험을 문서화하는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기도 했어서 세금신고하고 납부하고, 신청서 써서 접수하는 것까지 모두 기쁜 마음으로 했다.


그날 필수였던 업무를 모두 마치고, 스타벅스에 들러 카페인 충전을 했다. 제주도의 스타벅스는 일단 창 밖으로 야자나무가 보인다는 것부터 색달랐기 때문인지 사촌동생은 스타벅스에서도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아니, 이 정도는 도시와 별 다를 거 없는 광경이라고.. 이제부터 기대해!


 제주도 시내에 내가 가려던 페인트 가게가 있어서, 사촌동생과 함께 들렀다.


 제주집을 꾸미는 데 있어 내가 가장 크게 무게를 둔 것은 외벽 페인트칠이었다.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는 어차피 예산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붕과 데크, 마당의 색상은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색들과도 어울려야 했다. 또한 작은 집이니만큼 되도록 평범하지 않은 색깔, 그러면서도 세련된 색깔로 하고 싶었고, 그것이 결국엔 이 집의 시그니처이자 셀링포인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미리 비슷하게 생긴 집들의 사진을 잔뜩 수집해 두었었고, 사촌동생과 페인트 가게 사장님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색깔을 골랐다.

 원래부터 좋아하는  "그린"색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린" 색도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서 샘플 색상표와 카탈로그를 비교해 보면서 결국 한 가지 색깔을 골랐다.

 "헌터 그린"

이 색을 중심으로 해서 문과, 창문틀의 색도 골랐다.


 페인트칠도 생에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으로 여러 개의 페인트 통과 사다리, 롤러, 붓, 마스킹 테이프, 장갑 등등을 모두 사서 스타렉스에 싣고 제주도 고산리로 다시 출발했다.   


 오후에 접어들 무렵, 나는 사촌동생 함께 먼저온 식구들이 집 마당, 거실, 데크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있는 제주집에 다시 도착했다.

 이 어이없고 재미있는 상황에 식구들은 사촌동생을 무척 반겼고, 우리는 낯선 곳에서 모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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