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빠, 아들이 내일모레 사십인 게 더 웃기지 않아?
“야 이놈아. 아빠를 놀리고 그러냐"
전화 통화에서 요새 자꾸 시야에 굴곡이 생기고 눈이 침침해서 걱정이라는 아빠의 말에 '그건 아부지가 늙으셔서 그런 것 같애'라고 농담을 했더니 그러신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65세의 아빠는 내 눈앞 현실인데도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 '65세'와 '아빠'의 단어 조합이 영 어색한 것처럼.
조만간 집에 내려가면 아빠한테 물어봐야겠다.
65세가 되는 건 어떤 느낌이냐고.
-2017년 7월 13일 밤 12시 21분 휴대폰 메모
2017년, 내 나이가 서른다섯이었을 때 나보다 딱 서른 살 많은 아빠가 부쩍 생각났다. 65세가 된 아빠는 요즘 본인의 나이와, 세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새삼 아빠의 나이를 생각해보니 당황하게 되는 것이 여전히 아빠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그의 얼굴은 60대 중반 노년의 얼굴이 아니라 40대 중반 정도의, 내가 십 대 때 보았던 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도 아빠를 직접 볼 때마다 새삼 놀라고 가슴이 저릿했던 것이다. 마흔으로 다가가는 내가 삶의 반환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상념에 젖어들 때 아빠는 인생의 종착점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부터 막연하게 아빠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여자의 속내는 영 알 길이 없는 남자라서 같은 남자인 아빠 쪽이 그나마 어설피 그려볼 수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생각만 그리 들었지 뚜렷하게 무얼 하지는 않았다. 당시 나는 한창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얼마 되지 않는 여가 시간은 주로 아내와 함께 했으니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2019년, 67세가 된 아빠는 공공근로를 시작했다. 은퇴 후 몇 년 간 개인화물을 하시다가 장시간 운전이 힘에 부쳐 운전대를 놓은 다음 해였다. 그해 4월, 오랜만에 통화하는 아들에게 최근 시작한 일이 힘들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아빠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 : 아빠도 이제 늙어서 자꾸 힘이 든다.
나 : 그래도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몸을 자꾸 움직여야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아빠 : 아빠도 내일모레면 칠십이야.
나 : …아빠! 나는 내일모레 사십이야. 아빠 아들이 내일모레 사십인 게 더 웃기지 않아?
2019년 8월 31일 자로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내일모레 사십인 나는, 더 늦기 전에 글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었다. 4년 전 출간한 책 한 권이 지금 시점에서 씨앗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9월에는 혼자 치앙마이에 열흘 정도 다녀왔다. 엉덩이 진득허게 붙이고 글 쓰는 습관을 다시 만들어보겠다는 핑계가 꽤 그럴듯했던 탓에 양심상 낮에는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는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 살펴본 치앙마이 여행자 커뮤니티의 여행 후기나 질문 글에도, 치앙마이에서 마주친 한국인 여행객 무리 중에도 엄마와 딸이 함께 여행을 온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보았지만 아빠와 아들이 함께하는 부자(父子) 여행객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유를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의 특수성도 있겠지. 한국인이 아닌 해외 여행객 중에서도 부자 여행객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치앙마이에서 돌아와서 일단은 아내에게 먼저 장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빠와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노년을 맞은 아빠가 여전히 궁금했다.
아빠가 더 약해지기 전에 여행을 함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를 한 번에 하면 더 좋을 것이다.
2019년 11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내년 1월에 나랑 어디 좀 다녀올 수 있어?
자세한 건 일정 정해지는 대로 이야기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