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짝 Sep 29. 2020

여행 준비 - 우리는 치앙마이에 간다

서른 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부담여행


아빠와 내가 함께 할 8박 9일의 여정은 '부담여행'이다. 여행의 목적이 아빠와 이야기하는 것이니 부담(父談)이고, 아빠와 둘이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아들인 내게 여간 부담(負擔)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부담여행이다. 지금껏 아빠와 단둘이 보낸 시간의 신기록은 기껏해야 2박 3일 정도. 중학생 때 강원도로 낚시를 갔는데 2박 3일 사이에 할머니 댁에도 들르고 했으니 온전히 둘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 여행 계획에 대한 남자 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아버지랑 둘이 가서 뭘 해? 무슨 얘기를 해? 그것도 8박이나!?"


대부분의 부자 관계가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더 하다. 이심전심이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사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가끔 만난 자리에서 짤막하게 근황을 나누고 서로 큰 문제없이 살고 있음만 확인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조차 막막해지게 마련. 한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아빠와 아들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 걸까.
 

다행하게도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빠는 남들보다 말이 많은 편이고, 나는 그런 아빠를 닮았다. 우린 투 머치 토커 부자. 지난해 어느 주말에 어쩌다 약속이 있었던 엄마와 친정에 간 아내를 두고 아빠와 저녁을 먹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아빠와 하릴없이 근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두 시간 반이어서 나조차 놀랐다. 아빠랑 카페에 앉아 두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나.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빠와 여행을 떠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나름의 '사건'이었다.

 

치앙마이


여행지를 치앙마이로 정한 것은 순전히 '내 맘'이다. 그런 내 맘에도 이유라면 몇 가지 있다.


여행의 목적이 대화에 있다 보니 내가 아빠를 모시고 다니기에 편한 곳이어야 했다. 모시고 다니기에 편하려면 비교적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나도 처음 가보는 곳에서 아빠와 우왕좌왕하면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 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여행지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나누기에 아주 좋은 배경으로써 역할해주길 바랐다. 치앙마이는 내가 조금 안다고 할 만한 몇 안 되는 여행지중 하나이고, 최근 내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이라 실시간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주요 여행지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왕복항공비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현지 물가도 국내에 비해 저렴하다. 전 세계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동남아시아 주요 관광 도시의 식당과 상점 등에서는 대부분 간단한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지어를 잘 몰라도 비교적 수월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거기에 치안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가 동남아시아권의 다른 도시보다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는 곳, 태국과 베트남의 주요 관광도시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치앙마이는 이런 조건들을 썩 잘 갖추고 있으면서 가장 평화롭고 조용한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태국 제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방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고 붐비지 않는 곳. 고층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산과 나무가 더 친숙한 곳. 하루 종일 어느 곳에서든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호젓하게 걸어 다니다 마음만 먹으면 조용히 앉아 쉬거나 말을 섞기 좋은 카페를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곳. 치앙마이 특유의 느릿한 여유 속에서 아빠와 마냥 걷고, 둘러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걸을 맛이 나는 치앙마이 올드시티 골목


준비물 


기본적인 여행 준비물은 어딜 가든 다 똑같다. 여행지의 온도와 습도를 고려한 입을 것,  복용 중인 약과 비상약. 카메라,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와 그것들의 충전기, 여권, 돈, 세면/위생/미용용품. 그밖에 각자의 기호와 편의에 따라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을 것들. 그리고.


평소에는 챙기지 않았던 물건 하나를 이번 여행의 준비물에 더하기로 했다.


'소형 보이스 레코더'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기록'을 생각했다. 아빠와의 대화를 기록하자. 다녀와서 글로 정리하고 사진과 함께 엮어보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빠와 아들의 여행, 그 안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가 닿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혹은 또 다른 아빠와 아들이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결과물이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너무 모자라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내 힘으로, 단 한 권만이라도 책을 만들어서 아빠에게 선물해야겠다. 돈 잘 버는 아들은 아니어도 글 쓰는 아들을 두었기에 받을 수 있는 선물.


그리고 추억. 

아주 오랜 시간 후였으면 좋겠는, 더 이상 아빠와 이야기할 수 없는 때를 위해. 

기록이 필요하다.
 

일정


여행 경비를 아끼려면 성수기를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방학 기간과 연휴 기간은 피해야 하는데, 아빠의 공공근로가 3월부터 11월까지여서 빼도 박도 못하게 성수기에 다녀올 수밖에 없다. 어딜 가든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항공료는 두 배 이상까지 차이가 난다. 비수기에 혼자서 직항으로 왕복 24만 원에 다녀왔던 치앙마이 항공권이 1월 성수기에는 50만 원이 넘는 값으로 뛰었다. 나름 정해두었던 예산을 생각하니 항공료로만 100만 원을 훌쩍 넘게 쓰는 것이 영 아까웠다. 항공비를 10만 원만 아껴도 그 돈이면 치앙마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항공권 앱을 총동원해서 온갖 날짜와 항공사 조합을 다 시도한 끝에 '갈 때 직항, 올 때 방콕 경유'로 예약을 마쳤다. 오며 가며 타는 비행기의 항공사도 다르다. 왕복 총액 88만 2천 원. 대략 15만 원 정도는 아꼈다.


암만 저렴한 게 좋아도 아빠를 모시고 '경유 대기 14시간' 같은 일정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이후 여행 기간 동안 느낀 점이기도 하지만 가급적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올 때에는 부모님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일정을 짜야한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으시지 않을까'보다는 '이쯤에서는 지쳐하시기 전에 미리 한 번 쉬어가자'가 훨씬 낫다. 내 딴에는 그렇게 계획을 세운다고 했지만 나 또한 치앙마이에서 애를 먹었다.


2020년 1월 15일에 출국해서 1월 23일 밤 11시에 귀국하는 일정. 아직 출발까지는 한 달 넘게 남았다. 세부 일정을 짜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호텔 앱, 항공권 앱, 구글맵 3종 세트면 어느 곳이든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전 01화 서른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