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빠와 나 4
일 년에 한 번 꼴로 아빠가 돌아가시는 꿈을 꾼다. 매번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나오지 않고 돌아가신 후부터 꿈이 시작된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통곡을 하다 잠에서 깬다. 꿈이라는 걸 깨닫고는 욕지거리를 내뱉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런 가상 체험을 연중행사처럼 하는데 나는 변한 게 없다. 내가 아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런 꿈을 꾸고도 아빠에게 나는 그대로다. 아빠가 언제까지고 이 세상에 있을 것처럼. 영영 헤어지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지금까지 다녀왔던 모든 여행이 다 그랬다. 떠나는 날부터 여행의 중간까지는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예 없지는 않아도 지나간 날 보다 앞으로 맞이할 날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볼 수 있었다. 그러다 딱 절반이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가 없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헤아리며 아쉬움은 짙어져만 가는데, 그럴수록 시간의 흐름을 더욱 빨라졌다.
엿새 날 아침, 어제까지만 해도 아흐레 중 절반을 갓 지났을 뿐이었던 여행이 이제는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아빠와 둘만의 여행, 그 모든 시간과 순간이 귀하다는 걸 알지만 그러면서도 늘 같은 소중함으로 서로를, 흘러가는 시간을 대하지는 못했다.
어젯밤 아빠와 나 사이에 몰아쳤던 비바람이 물러가고 강물은 다시 잔잔해졌지만 흙탕물은 아침이 되도록 다 가라앉지 않았다.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는 동안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서먹한 기운이 남아 있어 서로 별 말이 없다.
코코텔의 조식은 첫 번째 숙소였던 로지텔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었다. 우유와 시리얼, 토스트를 포함한 빵 몇 가지에 햄과 베이컨, 계란 후라이가 준비된 서양식 조식 메뉴와 함께 밥과 면, 볶음과 국물 요리 등의 태국 메뉴가 갖추어진 뷔페 스타일이다. 호텔 규모는 더 크지만 연식이 오래된 로지텔에 비해 코코텔의 조식당은 아담하지만 밝고 정갈한 분위기가 났는데, 어느 곳의 조식이 더 나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코코텔의 마스코트인 '양' 모양의 틀에 구워낸 계란 후라이가 귀여웠는데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아침을 먹다 보니 미쳐 사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올드타운으로 돌아가 여행 마지막 숙소인 '웰스 부티크 호텔'에 체크인하는 날. 님만해민은 오늘 오전이 마지막이다. 치앙마이 올드타운과 마찬가지로 님만해민에도 유명한 카페가 꽤 많은데 그중 적당히 숙소에서 멀지 않고 가장 특색 있는 '리스트레토'에 가 보기로 했다.
리스트레토는 라떼 아트로 무척 유명한 카페다. 태국 라떼 아트 대회뿐 아니라 세계 대회 수상 이력까지 자랑하는 곳이다. 조식을 먹고 일찌감치 걸어 나왔더니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시각에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인테리어와 소품, 디자인에서 풍겨지는 느낌이 요즘 말로 '힙'한 스타일의 젊은 취향이라 살짝 걱정하긴 했지만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테이블에 손님도 띄엄띄엄 있고 나름 평온하고 조용한 분위기여서 아빠와 마주 앉아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았다.
나 : 아빠는 뭐 마실 거야?
아빠 : 연한 라떼가 먹고 싶은데.
이곳이 라떼가 유명한 카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아빠가 연한 라떼를 찾았다. 치앙마이 와서 여태 설탕 넣은 아메리카노만 마셨던 아빠가 라떼를 입에 올린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합이 잘 맞을 때가 있기는 하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메뉴첩에 있는 라떼의 가짓수가 상당했지만 종류별로 맛과 향의 정도가 잘 설명되어 있어서 아빠가 원하는 '연한 라떼'에 가장 가까운 것을 골라 주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빠는 한 모금 마셔보고 맛이 부드럽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하필이면 그 라떼의 이름이 '사탄(satan)'이라는 걸,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교회 장로님인 아빠에게 굳이 말해주지는 않기로 했다. 라떼에 그려진 기괴한 야수 형상의 라떼 아트를 아빠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조금 궁금하다.
주위를 둘러보며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먼저 아빠를 긁었다.
나 : 내가 아빠가 가진 모습 중에 제일 힘들어하는 거 두 가지가, 아빠가 우기는 거랑 삐지는 건데, 어제 아빠가 두 개 다 했어.
아빠 : 아이 시끄러워, 그건 한국에 가보면 알아.
나 : 가보면 알지(웃음), 잘 알아봐. 너무 상처 받지는 말고. 아빠 기억력이 흐려진 거에 대해서.
어제처럼 서로 공격적인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느 쪽이 선뜻 먼저 물러설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 : 그리고 아빠, 어제 보니까 피곤이 한 번 확 오고 나서는 만사를 다 귀찮아하시데? 컨디션이 별로야? 응?
아빠 : …재미가 없어.
아빠가 반격했다. 재미가 없다니. 아빠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미지가 큰 말이었다. 충격과 서운함이 뒤엉켜 아빠에게 '다다다다' 하고 말을 쏟아냈다.
나 : 왜? 언제는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더니, 아니 뭐가 재미없어? 어제 트레킹도 재미있었다면서.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 거야? 걷다가 쉬면서 커피 한 잔 하고 돌아다니는 거 좋다면서. 어제 야시장이 별로여서 그런 거 아니야?
아빠 : 머리가 아프더라고.
나 : 그러니까 그거 하나만 그런 거잖아. 야시장도 아빠가 별로라 그래서 바로 빠져나왔잖아. 그렇잖아도 나도 사람 너무 북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그냥 아빠 경험 삼아 보여준 거지 뭐.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야시장 간 거만 좀 그랬던 거지 나머지 일정은 다 괜찮았다고 했으면서... 그건 단체관광을 가도 마찬가지인 게, 어떻게 모든 일정을 다 만족시켜드립니까. 아니다 싶으면 얘기해줘서 빨리 끝내면 되는 거지. 아빠가 일정을 짜도 아빠 마음에 다는 안 들어.
이런 분위기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아빠는 또, 말이 없다.
나 : 치앙다오 갔다 온 것도 괜찮다고 했고.
아빠 : 치앙다오 좋았어.
나 : 거봐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좋았어. 어제 야시장 빼고는. (웃음) 야시장은 안 그래도 몸도 피곤한데 그렇게 복잡할 거 뻔히 알아가지고 아빠가 얼마 안 돌다가 분명히 따로 빠지자고 할 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구경 좀 하다가 저녁이나 먹으러 빠져야겠다 했는데. 뭐만 하자 그러면 다 싫다 그러고.
결국 문제의 발단은 선데이 마켓이었다. 아빠는 가뜩이나 피곤한데 세상 정신없이 복잡한 곳으로 안내한 아들이 못마땅했고 나는 이틀 연속으로 권하는 길거리 음식을 맛도 보지 않고 매몰차게 거절하는 아빠에게 서운했던 것이다.
아빠 : 우리나라 야시장 하고는 다르게 여기는...
나 : 어제는, 야시장이 잘못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너무 많았던 거야. 게다가 지금 시즌이 (관광객들이)워낙 많이 오는 시즌이라.
아빠 : 중국 가서 야시장을 몇 군데 갔는데, 그쪽은 야시장 음식이 다양하기보다는 꼬치로 해서 메뚜기부터 뭐다 뭐다 있는데, 아우 그거 보니깐 아주...(보기에도 싫고 맛도 싫었다는)
나 : 중국 꼬치랑 맛도 다른데. 인상만 보고 맛도 안 보고 싫다고 막.
아빠가 매번 길거리 음식을 권할 때마다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했던 이유가 중국 야시장에서 본 길거리 음식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됐다.
아빠 : 아니 막... 새로운 거 그런 거 싫거든.
나 : 그럼 여행은 왜 다닙니까.
아빠 : 보는 건 괜찮은데, 그래도 중국은 야시장 가서 보면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으니까 문방사우나 수제품들 만들어 놓은 거 보고 그런 건 좋았으니까. 붓도 사 오고 글씨도 새겨 오고.
나 : 뭐 어디만 가면 중국 여행 갔던 거랑 비교하고.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아빠의 중국 여행 얘기에 한 마디를 하고만 나에게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그리고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 아빠는 그게 다잖아.
말문이 막혔다. 뭔가 짠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 배려가 부족해. (몇 초 지나서) 아빠나 나나.
나 : 아빠 조심해. 구석으로 더 붙어서 걸어야지.
리스트레토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래도 님만해민은 올드타운에 비하면 인도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것일 뿐, 곳곳에 인도가 아예 없는 구간에서는 알아서 조심해가며 도로 바깥으로 걸어야 한다.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빠를 살핀다.
나 : 아빠는 사주 같은 걸 안 믿겠지만 나는 사주가 일종의 통계학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 사주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만약에 아빠 사주가 있다고 하면 다른 건 몰라도 아빠는 사고 수가 진짜 많은 것 같애.
아빠 : 사주가 오행이고 어쩌고 하는 건... 나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나 :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주가 아니라, 사고가 많다는 거지 사고가. 그게 꼭 아빠 잘못이든 아니든 간에. 오토바이 사고 때도 그랬고. 교회 일하다 다친 것도 그렇고. 또, 자동차 사고도. 그리고 이거, 새끼손가락.
우유 배달하던 시절 오토바이 사고와 얼마 전 자동차 사고는 그간 아빠가 당했던(혹은 일으켰던) 사고의 일부에 불과하다. 10년 전쯤에는 회사 화장실 문짝이 고장 난 것을 직접 나서서 고치다 드릴에 왼손 목장갑이 말려 들어가는 바람에 네 번째 손가락이 크게 상했다. 그 일로 아빠의 왼손 약지 한 마디가 짧아졌다.
가장 큰 사고는 1994년 겨울에 일어났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학교로 전화가 걸려왔던 것 같다. 누군가 교실로 찾아와 아빠의 사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빠는 교회 종탑에 크리스마스 전등을 달고 내려오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머리에 중상을 입었다. 머리 안에 핏덩어리가 졌다는 식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나는 나이 때문에 아빠가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머리뼈에 구멍을 내고 수술을 받은 아빠가 마취에서 깨어나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 어찌 된 일인지 안도에 앞서 겁이 덜컥 났다. 그때 처음으로 아빠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은 아빠는 한 달이 넘게 병원에 있었다. 겨울 방학이 되어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아빠의 병실로 출근했다. 한 손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스포츠 신문을 사 들고.
나 : 아빠 교회에서 떨어진 것도 어깨부터 떨어지지 않았으면 그냥 하늘나라 가는 거 아니었어?
아빠 : 머리로 먼저 떨어졌는데 무슨.
나 : 어깨부터 떨어진 다음에 머리 부딪힌 거 아니었어? 그래서 충격이 좀 머리에 덜해서.
아빠 : 등으로 거꾸로 떨어진 다음에 머리 먼저 부딪혔지.
나 :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살기 힘든 거 아냐?
아빠 : 아이, 요 높이(한 3미터쯤 되는)에서 떨어졌으니까 머리가...
나 : 교회 종탑에서 떨어졌는데?
아빠 : 아니야, 아이 종탑에서 떨어졌으면 죽었지. 종탑에서 내려와서 옥상 지붕 위에서 내려오다 뒤로 떨어져서...
아빠는 그 이후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 : 아빠가 이렇게 됐어도(사고가 나도) 상황에 대처하는... 그게 빨라.
아빠는 뜬금없이 순간 대처 능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사고 날 뻔한 상황에서 대처를 잘해서 위기를 모면하거나 피해를 줄인 몇 가지 경험담을 들려주는데, 그걸 듣는 나는 아빠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구나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 제일 좋은 건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안 만드는 거지!
그저 사고 조심하고 위험한 일 좀 하지 마시라는 아들의 걱정 어린 타박에도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시작한 무용담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런 무용담이 내게는 시쳇말로 '후덜덜'할 뿐이었다.
아빠의 이야기는 숙소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