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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링 Oct 28. 2022

안전벨트가 되어주는 것

삼삼한 육아일기





어린 시절에 대해서 엄마가,

“너 그때 기억나?” 하고 물어보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전혀 모르는 아이의 일화를 듣는 것처럼.


그런데 꼭 이런-아무도 “너 그때 기억나?”라고 묻지 않는-순간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날은 왜 우리가 만원 전철에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미취학 아동 둘을 데리고 급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크고, 검고, 엄청나게 많은 어른들이

우리가 타고 있던 지하철 칸에 자꾸만 올라탔고,

순식간에 가득 차서 무서웠어요.


이러다가 숨을 못 쉬는 게 아닌가 걱정할 무렵,     


“그만 밀어요! 우리 애들 다 죽어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여러 번 울렸습니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니, 엄마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어요.

우리 남매가 찌그러지지 않게.      


엄마의 모습은 연약하지만 아주 강한 방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숨이 쉬어지고, 안심이 되었어요.

엄마 안전벨트가 작동했던 거죠.     


엄마가 억척스러웠던 순간들은 대부분

우리를 지킬 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는 그렇게까지 목소리를 크게 낸 적이 없었으니까요.


나도 엄마가 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의식해 본 적 없다는 것이 미안해졌습니다.

          


며칠 전, 거니와 시내버스를 탔을 때였어요.

자리에 앉은 거니가 왜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나는 마을 안을 운행하는 버스들은 이렇게 안전벨트가 없다고 설명해 주고,

팔을 거니 몸 앞에 안전벨트처럼 두르며 말했습니다.  


"우리 금방 내릴 거야.

엄마가 그때까지 안전벨트 해줄게."

   

그러자 거니가, 작은 팔로 내 몸을 똑같이 감싸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안전벨트가 없잖아요.

내가 엄마 안전벨트 해줄게요."    

 

우리는 서로에게 팔을 두른 채로

창밖을 구경하며 세 정거장을 지났습니다.

나른한 햇살이 지고 있는 오후였어요.     


문득, 엄마에게 내가 안전벨트였던 순간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

엄마한테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었어요?

나 키우면서 감동 받았던 적!”     


“글쎄, 갑자기 물어보니까…

아, 한번 내가 엄청 아팠던 적이 있었어.

너는 아주 어린 아기였고.

근데 세상에 그 애기가 내가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있으니까,

자기 우유를 안 먹고 나한테 주는 거야.

엄마 먹으라고. 그때 좀 놀라고 감동했지.”     


역시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그때 기억나? 하고 묻는 얘기들은.


그래도 그때 그 꼬마가 그렇게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지켜준 것처럼,

나도 엄마를 지켜준 날들이

있었다는 것.     


내가 거니에게 거니가 나에게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나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벨트가 되어준다는 것.    

 

우리가 계속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 같아

버스를 내릴 때는 씩씩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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