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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수 Sep 20. 2024

개살구 구르기

알찬 참살구로 맺히고싶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정확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정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나에게 주어지는 삶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체력과 정신을 쏟아야 절반은 감당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넘치게 살다 보니 언제나 바쁜데, 어쩐지 내 안은 궁핍한 느낌이 들었다. 들여온 시간과 연차는 살면서 자연스레 쌓였지만 겉옷만 화려해진 내실 없는 개살구가 된 그런 기분.


그래서, 나는 지금 정확히 어떤 사람인데?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면 그리로 훨훨 날아가버릴까 봐 신기하리만큼 꺾이고 말았다. 지레 병이 들거나, 딱 그 조건이 기가 막히게 닫혀버렸다.


목소리를 쓰려고 하면 성대에 문제가 생기고, 모습으로 나아가려 하면 피부질환이 생겼다. 야외를 다니려 하니 햇빛을 받으면 안 되는 병이 생겼고, 강의가 잦은 직장을 다니며 시간과 체력이 뺏기자 그대로 모든 게 멈췄다. ‘절대안정’ 팻말이 걸린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보낸 시간을 기점으로, 달아나버린 체력이 한 줌도 남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았다. 꼼짝없이. 이대로 어디로 향하라는 것일까, 무엇 먼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해 어떻게 살아가라고 꿈꾸면 무너짐을 반복하는 걸까? 상심하기엔 개살구라 더 알차야 눈물이라도 날려나 싶다. 그래서 사실 눈물은 안 난다.


단지 이번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도하는 와중에 바스러진 체력과 몸뚱이를 어떻게 요령 좋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내 삶은 운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때론 타이밍이 아쉽다. 내가 삐끗한 것일까?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이번엔 뭘 시도할 때에 무엇이 꺾일까? 그럼에도 무얼 어떻게 하며 살아갈까? 매일 할 일은 정해놓는데 나의 앞 날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시간은 쉼 없이 계속 계속 새어나간다. 잠그는 호스가 고장 난 수도꼭지 같다.


인생은 답이 없는 게 맞지만 나는 나름대로 내가 내실을 채워가는구나 싶은 내 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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