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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19. 2016

고양이 보안관

1. 이스탄불 술탄아흐멧 지구의 새벽

 



터키 이스탄불 술탄아흐멧 지구의 새벽은 고양이가 지킨다. 밤이 되면 더욱 반짝이는 고양이 눈 속에는 조명을 받아 파랗게 빛나는 블루모스크의 첨탑이 담긴다. 고양이들은 낮에 못다 운 울음을 울고, 담벼락을 오르내리며 화려한 과거를 품은 도시를 배회한다.      


도로에 박힌 네모난 돌조각은 캐리어를 끄는 여행자의 새벽길을 고행으로 만든다. 그 옆을 고양이가 감시라도 하듯, 잰 걸음으로 따라온다. 바퀴가 돌조각과 씨름하며 내는 큰 소리에 잠이 깬 노인들이 창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민다. 10월의 어느 새벽, 나는 그렇게 이스탄불에 첫 발을 내디뎠다.      


"메르하바(Merhaba)"     


안이 들여다보이는 작은 창문으로 희미한 주황빛이 새어나왔다. 문을 여니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루 25리라(TL, Turkish Lira), 우리 돈으로 1만5000원 정도 돈을 건네고 방을 배정받았다. 철제 이층 침대 3개가 놓여있는 2층 게스트하우스. 방에는 2명의 여행객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누워서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찾기 위해 여기에 온 걸까.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이유없이 아팠다. 안에서 시작된 고통, 나를 옥죄는 우울은 그 출발점조차 알 수 없었다.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과정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던 사람을 모질게 떠나보내기도 했다. 내리 일주일을 울기도 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끈 떨어진 풍선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펑펑 울고 나서도, 내가 지구에 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던 나날이었다.      


딱딱하고 추운 게스트하우스의 침대에서 뒤척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를 이 곳에 보낸 것은 나의 마지막 의지였을 지 모른다고. 홑겹 이불이 얇아서 발가락 끝이 시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반대편 침대에 누워있는, 머리가 하얀 중년의 서양인 여성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견디지 못할 것들과 견딜 만한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길러보라고 이 생이 나에게 허락한 시간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술탄아흐멧 지구의 한 작은 게스트하우스 202호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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