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취존생활
내가 보기에 남편은 게임중독이다. 신혼 때부터 결혼 10년 차가 넘은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컴퓨터 게임을 한다. 밤을 새우거나 긴 시간을 하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규칙적으로 하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집중해서 즐긴다. 방이 두 칸밖에 없었던 좁은 신혼집에서도 남편은 드레스룸 한편에 책상과 컴퓨터를 세팅하고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자신의 방을 가지는 줄 알았다. 퇴근해서 밥 먹고 정리하는 한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남편은 잠들기 전까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취미 활동을 한다.
신혼 때에만 해도 그의 취미 생활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남편이 게임하는 시간에 나는 TV를 보거나 하고 싶은 걸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편의 게임은 눈엣가시가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느라 힘들었기에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을 눈이 빠져라 기다렸고 남편이 아이를 봐주거나 나를 봐주거나 둘 중 하나는 봐주길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컴퓨터 게임을 한다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았고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됐다. 게임 문제로 싸울 때마다 “끊어라!” “일주일에 두 번만 해라!” “하루에 한 시간만 해라!” 온갖 규칙이 생겨났지만 결국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루는 차에서 잠든 두 아이를 안고 집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게임하느라 늦게 마중 나온 남편에게 어찌나 분노했는지 컴퓨터 선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남편의 안경을 집어던졌다.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 남편의 방문에서 흘려 나오는 총 쏘는 소리와 불빛이 내 마음을 얼마나 싸늘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몸이 힘들었고 아이들이 조금 크자 마음이 외로웠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블로그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을 만나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어느날 동네 아줌마들이 아이를 재우고 모여 맥주 한잔을 하는데 한 친구 남편의 취미는 낚시라 주말마다 낚시를 갔고, 또 다른 친구의 남편은 산을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산행을 갔다. 세 번째 친구의 남편은 일중독이라 밤낮없이 일을 했고, 네 번째 친구의 남편은 매일 술이야~였다. 각자 남편의 취미생활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집구석에서 게임하는 남편이 제일 낫네~ 하면서도 백 프로 그의 취미 생활을 존중해주지 못했다.
아침마당 대구 방송에서 여름방학 특강 강사로 방승호 교장선생님을 섭외를 한 적이 있다. 노래하는 교장으로 잘 알려진 방승호 교장 선생님은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PC방을 만든 교육자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심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남편이 매일 밤 게임을 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돈이 안 드는 취미생활이에요. 격려해주세요. ”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꽤 설득력 있는 답변이었다.
격려까지는 안 되겠고 남편의 취미 생활을 이해하기위해서는 더 강력한 나의 취미가 필요했다. 둘째가 어린이 집에 가면서 나는 중독성 강한 운동인 탁구에 빠지게 됐다. 점점 재미를 들이면서 밤탁(밤에 치는 탁구)도 가야 하고 리그전을 나가야 하는 스케줄이 생겼다. 남편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존중받기 위해 나의 취미 생활을 적극 지원해줬다.
"남편이 게임하는 거 그냥 좀 내버려 두지~"라는 말은.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이제야 남편의 삶에 왜 게임이 필요했는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리지도 않고 나에게도 게임에 맞먹는 취미가 생겼으니 말이다.
남편은 게임중독, 아내는 탁구중독. 부부의 취존생활은 평화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