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아내 VS 대답 없는 남편
나의 질문 인생의 최대 난관은 남편이다. 대외적으로는 질문의 여왕이지만 남편에게만큼은 나의 질문이 도무지 먹히질 않는다. '질문하기를 지지리도 좋아하는 아내'와 '말하기를 지지리도 힘겨워하는 남편'의 어처구니없는 조합. 남편은 질문의 여왕을 아내로 맞아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만나 속 터지는 일상의 살고 있다.
남편은 특히 이런 류의 질문을 싫어한다.
뭐 먹고 싶어? 뭘 먹을까? 오늘 점심 메뉴는 뭐였어?
먹는 걸 즐기지 않는 그는 먹는 것과 관련한 질문을 하면 대답하기 힘들어했다. 초식남인 그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주는 대로 먹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심지어 알약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반면 먹는 걸 즐기는 나는 남편이 점심 때 뭘 먹었는지조차 궁금해 자주 묻곤 했다. 어느 날 남편은 무엇을 먹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며 이제 그 질문은 그만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남편은 내 인생의 로또다. 취미와 성향 도무지 맞는 게 없고 서로의 속도가 달라서 공통의 관심사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힘들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다른 사람에 비해 나와 깊이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지금은 묻고 싶은 게 많아도 남편 앞에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심사숙고해서 꼭 들어야 하는 질문 한 두 개로 압축한다. 해봐야 속 시원 대답을 들을 리 없기에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0년이 되기까지 어땠는가.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어떤 하루였는지 묻고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그의 공감을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긴 침묵. 때때로 그의 의견이나 생각을 들으려고 질문을 구체적으로 쏟아냈지만 남편의 대답은 식어버린 커피 같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Yes or No를 선택하라고 했겠는가.
남자니까, 게다가 경상도 남자니까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 거겠지, 성격이 원래 그래, 감정표현을 잘 못하니까, 아무리 포장을 해봐도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디 대답만 하지 않는가. 그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질문도 하지 않는다. 업체에서 전화 한 통해서 물어보면 끝날 문제를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찾고, 백화점에서 화장실이 급한데 점원에게 물어보지 않고 한층을 빙빙 돌며 찾아 헤매고, 한 번이라도 가본 길은 내비게이션조차 켜지 않는 남자다.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물어보면 쉽게 끝날 문제를 질문하지 않아서 몸이 개고생하는 스타일이다.
내 남편이 얼마나 질문을 하지 않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떠든 적이 있다. 그랬더니 대다수의 남자들이 그렇단다. 특히 경상도 남자들은 남편과 같은 부류가 많다. 오죽하면 경상도 남자가 집에 들어오면 “아는?” “밥도” “자자” 딱 세 마디 한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대체 남자라는 존재는 왜 질문하지 않는가?
해답을 찾기 위해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질문하지 않는 것 같아?
질문을 던져 놓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머리로 생각을 하는 듯한데 입까지 나오는데 한세월이다.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할 리가 없지. 결국 그가 입이 열기까지 참지 못하고 사지선다형으로 갔다.
1. 질문하는 게 귀찮아서 2. 질문받는 사람이 불편할까 봐
3. 너무 뻔한 질문일까 봐 4. 부끄러워서
네 개 중에 하나 고르라고 했더니 모두 다 조금씩 있는 것 같다는 또 섞어찌개 같은 답을 내놨다. 그 비밀을 풀기위해 그나마 말 좀 하는 주변 남자에게 물었다.
“대체 왜 남자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요?”
“다 필요 없고 자존심 때문이지!”
그 답을 들으니 답답했던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이걸 결혼 10년 차가 넘어서 알게 됐다니. 누가 여자를 연구대상이라고 했는가. 나에게는 말없는 남편이 연구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