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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여자 Mar 17. 2020

아이의 질문

정답을 말해주기보다 질문을 격려하라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나도 궁금한 게 참 많았던 것 같다. 궁금한 게 생겨서 엄마한테 뭔가를 물어보면 엄마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을 했다. 심지어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를 물어봐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몰라서라기보다 농사일을 하며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것만도 버거운데 아이의 질문에 일일이 답할 여유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처럼 팍팍한 삶도 아닌데 아이의 질문이 부담스럽고 귀찮고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전히 잘 대답해줘야 한다는 부담과 귀찮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잡지에 실린 이어령 박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어떻게 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엄마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실 엄마가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없어요. 어린아이들이 어른인 우리보다 훨씬 생각하는 게 새로운 걸요. 무엇인가 궁금해서 질문하는 아이가 다소 엉뚱해 보이더라도 절대 윽박지르며 억누르지 말고 무조건 친절히 응답, 격려해야 해야 해요. ‘엄마 새는 왜 울어?’ 어른들도 잘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아이들은 물어요. 과학자도 답을 못할 겁니다. 절대 풀릴 수 없는 궁금증이 있더라도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어. 새가 왜 울까? 엄마랑 같이 알아볼까? ’라고 대응하는 엄마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미래가 좌지우지될 것입니다.  


 아이의 질문에 엄마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좌지우지된다니!! 이어령 박사의 가르침 대로라면 어른은 아이의 질문에 답할 수 없고 아이의 질문에 같이 알아보자고 친절하게 응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첫째에 비해 질문을 잘하지 않는 다섯 살 둘째가 엄마 왜 손에 주름이 있어?’라는 질문을 했다.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히 보더니 손금을 보고 질문한 것이다. 나는 손금이 왜 있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가. 손바닥의 손금을 보며 생명운과 성공운을 궁금해했던 적은 많다. 하지만 사람마다 모두 다른 손금이 왜 존재하는 건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이어령 박사의 글을 읽었던 터라 먼저 ‘정말 좋은 질문이야’라고 답하고 ‘글쎄 왜 손에 주름이 있을까... 같이 생각해보자’라고 대답했지만 뭔가 뒤끝이 개운하지 않았다. 여전히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는 답답함이 남아 있었고 그 뒤에 뭔가를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네땡땡을 뒤져 정답을 말해준들 내 마음이 시원했을까. 한 달 뒤쯤 다시 둘째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왜 손에 주름이 있냐고 물었지?’라고 물으니 둘째가 한치 망설임도 없이 ‘생명선이래. 선생님이 말해줬어’ 아이의 질문에 선생님은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말해준 모양이다. 어른이 질문을 해결해준 순간, 아이의 호기심은 거기서 멈췄다. 

 아이들의 질문은 허투루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어른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진다. 주변을 예민한 시선으로 관찰하니 궁금한 게 샘솟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물어보며 정보를 습득한다. 이때 어른의 역할이 중요한데 단순히 정보를 주는 질문과 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을 구분해서 답을 해줘야 한다. 


 화장대 앞에서 외출할 준비를 하는데, 둘째가 다가와 빤히 쳐다보더니 엄마, 머리카락은 왜 계속 자라?’라는 질문을 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고 내가 단 한 번도 궁금해본 적이 없는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당연히 나는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어른이 되면 키는 그만 자라는데 왜 머리카락은 계속 자랄까, 엄마도 정말 궁금하네”정도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는지 아이도 나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 뒤쯤 양말을 신던 작은 딸의 손톱이 부러졌다. 손톱이 길어서 양말의 실과 얽히며 갈라진 것이다. 작은 딸의 손톱을 정리해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쉽게 상할 수 있어서 계속 자라나 보다. 네 생각은 어때? ” 그랬더니 작은 아이가 스님은 빡빡머리도 다시 자라잖아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고 잘 모르겠거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또다시 질문하고 토론해 나가는 것이 명료한 답을 말해주는 것보다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고 그전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더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얻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다.

 아이의 질문에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정답을 말해주는 것보다 질문을 칭찬해주고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 갈 수 있도록 역 질문하는 것! 사고의 폭을 더 넓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어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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