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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여자 May 09. 2020

엄마는 꿈이 뭐였어?

 “엄마는 꿈이 뭐였어?”

첫째의 질문에 아주 오래된 기억의 서랍이 열렸다.

 “고아원 원장”

 “그런데 왜 작가가 됐어?”

 “어쩌다 보니까”

 초등학교 때 자신의 꿈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고아원 원장이 된 나를 그린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주위에 고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이타심이 많은 편도 아니다. 나름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교회에서 고아원 봉사를 갔던 게 전부다. 그런데 나는 왜 고아원 원장을 그렸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착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 과제를 보고 평가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뻤던 것도 아니고 집안이 빵빵 것도 아닌 나는 ‘착함’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선행을 세뇌받은 것이 한몫했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착함과 거리가 있다. 언니에게 양보하거나 지는 것을 싫어했고, 오빠가 받는 특혜에 문제제기를 하며 끊임없이 내 몫을 요구했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런 나와 고아원 원장이라는 꿈은 어울리지 않다 못해 사이즈조차 맞지 않다. 안된 게 천만다행이다.     


 사춘기가 되면서 내 꿈은 솔직해졌다.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못 배운 게 한(恨)인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녀들을 대구로 조기 유학을 보냈고 내 나이 10살 때부터 자취생활이 시작됐다. 부모님과 분리된 삶은 결핍 그 자체였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쯤 자취집에 와서 돌봐줄 뿐 끼니부터 공부까지 모든 것이 10살짜리가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공부로는 출세를 하지 못할 것 같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풍족하게 살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고 가장 좋았던 것은 더 이상 도시락을 싸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싸간 도시락은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그마저 못 가져간 날이 많아서 점심시간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도시락 해방과 함께 대학생이 되고 또 좋았던 것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입학하기 전에 조그마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내 꿈은 분위기 좋은 곳에 카페를 차리는 거였다.

졸업을 앞두고는 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입이 꽤 짭짤했다. 하지만 딱 한 달을 하고 깨달았다. 난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반마다 들어가서 똑같은 걸 가르쳐야 하는 게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작가가 되어서는 매일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 게 곤혹스럽지만 말이다. 같은 걸 반복하는 노동보다 매일 다른 것을 해야 하는 노동이 고통스럽지만 그 재미는 비할 바가 못된다.

       

 내 나이 마흔, 인생의 반쯤 달려온 나는 어떤 꿈을 꿔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차에 질문 공주 첫째 딸이 좀 더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다시 직업을 가지라면 작가 말고 어떤 걸 하고 싶어?”

 “글쎄... ”

 한참 동안 답을 주지 못했다.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주위에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사람들의 직업을 떠올렸지만 다들 나름의 고충이 보여서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 딸이 대답을 재촉해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직업을 말했다.

 “한의사”

 “왜?”

 “아픈 사람의 마음과 몸을 고쳐줄 수 있으니까”

  전문성을 가지고 적지 않은 돈을 벌며 다른 사람의 건강한 삶을 도울 수 있는 인생이란 참으로 멋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것들도  근사하다. 지금  꿈은 방송 일과 일상을 균형 있게 병행하며 건강한 삶을 사는 거다. 일을 하며 적당한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취미 생활을 하며 짬짬이 글을 쓰는 . 이게 마흔의  꿈이다.  정도도 충분히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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