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자라는 아이들
모전여전이라고 내가 ‘질문의 여왕’이라면 내 딸은 ‘질문 공주’다. 나와 있는 동안은 ‘뭐야’와 ‘왜요’를 입에 달고 산다. 마치 추임새처럼 ‘왜?’를 하는 가하면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루 평균 2,30개의 질문을 던지니 그때마다 ‘정말 좋은 질문이야~’라고 화답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현실은 피곤하다.
“00야 기침에는 사과가 안 좋대”
“왜?”
“시골 할머니도 그러셨고, 한의학에서도 그렇게 말해”
“왜?”
“사과에 기침이 안 좋은 성분이 있나 봐”
“왜?”
이쯤 되면 대답하는 내 말투에 슬슬 짜증이 섞이기 시작한다. 어디 그뿐일까 나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뭐 하는 건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묻고, 낯선 곳을 가면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폭탄이 이어진다.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는 그녀의 질문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고 좋게 마무리 짓는 것도 쉽지 않다.
“00가 11월 23일에 콩쿠르를 나가서 상 받았네? 아빠 제대한 날인데”
“제대가 뭐야?”
“남자들 군대를 졸업하는 걸 말하는 거야”
“남자들은 왜 군대를 가야 해?”
“우리나라 법이 그래”
“누가 그런 법을 만들었어?”
끊임없이 쏟아내는 질문에 더 이상 답해주기 귀찮은 아빠의 마무리는 언제나 “글쎄...”
그녀의 ‘왜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블로그에서 육아 일기를 뒤져보니 한국 나이 4살 즉 만 3세 때부터 시작됐다. 무슨 말만 하면 왜?라고 토를 달아 대답을 안 해줄 수도 없고 대답을 해주자니 끝도 없이 왜가 붙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밥 먹자 // 왜요?
양치질하자 // 왜요?
자자 // 왜?
저기 누가 오네 //왜요?
꽃 폈다 //왜요?
집에 갈까? //왜요?
이건 호기심이 아니라 반항 같았고, 질문이 아니라 마치 습관적으로 토를 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1년 정도는 왜요를 입에 달고 사는 딸에게 대답을 잘 대답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과 밀려오는 짜증 사이에 갈등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왜요?라는 질문이 사랑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림책 <왜요?>(린제이 캠프/베틀북)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이 책의 주인공 꼬마는 내 딸을 능가할 만큼 왜요?라는 질문으로 부모님을 곤혹스럽게 하는 아이였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위로가 됐다. 이런 애가 또 있구나)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 외계인이 침공했고 그 외계인들에게 꼬마가 왜요?라는 질문을 연발해서 뒷목 잡고 지구를 떠났다는 깜찍 발랄한 이야기다.
왜라는 질문에 질려하던 나는 이 책을 읽을 후로 딸이 “왜요?”라고 질문하면 씨익 웃으며 “왜 그럴까”라고 역질문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가 질문을 할 때 근사한 대답을 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뒤로하고 아이 스스로 자신의 질문을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지도록 패턴을 바꾼 것이다. 그 뒤로 아이는 자신의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됐고 단순한 왜요의 반복이 아닌 차츰 질문다운 질문을 했다. (물론 지금도 왜요를 반복할 때도 있다ㅜㅜ) 아이의 생각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거듭 질문을 던져주며 아이들의 생각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