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질문
"남편, 우리 둘째 언제 낳을까?"
"...."
"당신은 둘째를 낳고 싶긴 해?"
"반반"
늘 그렇듯이 남편은 나의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둘째를 가지는 게 짜장면 짬뽕을 주문하는 것도 아닌데 반반이라니. 첫째가 두 돌이 가까워오자 남편에게 더 집요하게 물었다. 첫째와의 터울도 생각해야 하고 나이가 노산에 가까웠기 때문에 나의 가족계획상으로는 빨리 둘째를 가져야 할 시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급한 나와 달리 남편은 둘째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고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서로의 합의 하에 둘째를 낳고 싶었던 난 답답하고 속상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아도 대부분 나의 계획과 생각을 따라주던 남편이었기에 뜨뜨 미지근한 남편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혼자 둘째 계획에 돌입했다. 가임기 날짜를 계산하고 분위기를 살피고 작전 돌입. 나는 둘째를 가지는 데 성공했다.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남편은 기뻐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남편은 절대 둘째를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물었을 때는 반반이라더니, 왜 가지고 싶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더니 막상 임신 사실을 말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반가움도 없었다.
거기서 끝냈다면 착하고 순한 남편은 시간이 흐르면 물 흐르듯이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둘째의 임신 사실을 기뻐하지 않는 남편에게 분노했고 추궁했다. 왜 둘째를 원하지 않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묻기 시작했고 남편은 점점 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결혼 7년 차. 둘째를 임신하고 우리 부부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단순히 둘째를 가진 것이 갈등의 시작이 아니라 그동안 곪디 곪은 부부의 문제가 터지는 사건이었다.
자존감이 낮고 애정결핍이 있는 나는 남편에게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원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의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불같이 화를 내고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남편만 바라보았다. 신혼 때에는 남편은 참아주고받아주려고 노력했다. 첫째를 낳고 육아가 힘들었던 나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를 도와주길 원했고 육아로 지친 나를 위로해주길 원했다. 점점 더 정서적으로 남편을 의지하게 된 것이다. 휴일에 아이와 나를 두고 외출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직장에서의 일만도 벅찬데 집에 들어오면 징징대는 와이프와 돌봐야 할 아이까지 있으니 남편은 숨 쉴 틈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하나인데도 헉헉거리며 남편에게 의지하는 아내가 버거운데 둘째까지 생기면 얼마나 자신의 삶이 팍팍해질까 생각했던 남편은 절대 둘째를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는지. 왜 남편이 둘째를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지를 말이다.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고 미친 듯이 서운했고 이혼을 생각했다.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서 결혼생활을 돌아보아보게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가족의 발견>(최광현)이라는 심리학 책을 거울 삼아 나의 심리 상태와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를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여자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 두 사람의 아슬아슬했던 7년간의 결혼 생활이 둘째를 가지는 문제로 리셋이 됐고 둘째는 지금 6살이 되었다. 우리 부부 관계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딱 한 뼘 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