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질문
좋은 세상이다. 핸드폰에서 빨간 버튼 하나 누르면 원하는 시간에 양질의 강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찾아가야 하는 수고도 없고 심지어 공짜라 자주 유튜브에 올라오는 강의를 듣는 편이다. 어제는 유명한 상담사의 부모교육 편을 듣는데 강의 내용 중 자신이 심리상담을 하는 한 아이가 엄마를 사자로 표현했다는 부분이 있었다.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두 딸에게 물었다.
하하야 엄마를 동물에 비유하자면 어떤 동물인 것 같아?
첫째는 나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호랑이’라고 했고 둘째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토끼'라고 했다. 첫째의 대답은 희미하게 우려했던 것이 매직아이처럼 또렷이 현실로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호랑이라니, 무서운 선생님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해?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첫째에게 물었다.
생긴 게 그런 것 같아.
내 눈이 좀 매섭게 생기긴 했다. 그래도 엄마를 호랑이에 비유했다는 것은 엄마 말과 행동이 무섭다는 거다. 분명 얼마 전까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했는데...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문제는 공부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나 1학년을 보내는 동안 거의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해서 한글을 습득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었고 학교 숙제도 스스로 하는 편이라 가능한 학습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이미 학습지나 학원을 통해 선행을 한 아이들 사이에서 학교 수업을 근근이 따라가던 딸은 자신이 수학을 못한다고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내가 직접 가르치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감정이 앞서서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다. 2학년이 되면서 수학만큼은 외주 업체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학습지를 신청했다. 갈등은 거기서 시작됐다. 하루에 해야 할 학습지의 분량이 있건만 첫째는 도무지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습지 풀라는 말을 두 번 눌러 참고 세 번째는 도저히 참지 못해 ‘해야 할 것을 하라’하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집중할 리 없고 그렇게 몇 번 스파크가 튀고 신경전을 치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호랑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사교육 하지 않고 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전) 웅진 씽크빅 대표의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주위에서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해서 명문대를 가서 좋겠다는 말을 하자, ‘내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라고 말이다. 그분을 닮고 싶고 그 길을 따라가고 싶지만 말하고 싶은 걸 참는 건 나의 체질과 맞지 않다. 꾹꾹 누르고 있다 보면 결국 어디서 터져도 터지고 만다. 도무지 못 참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대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아이에게 게임처럼 질문을 하라고 한다.
“너 공부 언제 할 거야?”가 아니라, “오늘은 어디서 공부할 거야?” 로 질문을 바꾸면 아이는 게임으로 인지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도 하루 이틀이다. 그렇게 질문을 해봤지만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선택한 것은 반 협박이다. 학습지를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끊어주겠다. 선택을 하라고 말이다. 아이는 학습지를 들고 책상으로 갔고 나는 오늘도 호랑이 엄마가 되었다. 계속 호랑이 엄마이고 싶지는 않다. 과연 어떻게 질문을 바꾸면 호랑이 엄마에서 토끼 엄마로 변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