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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없는 거북이 Nov 02. 2019

1.
나는 오른손잡이다. 나는 자신의 오른손에 쥐어진 기종도 모를 권총을 관자놀이에 가져가 대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큰 소리와 화약 냄새가 내가 앉아 있던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나의 몸은 총알의 진행방향으로 쓰러졌고 총알이 관통한 것으로 보이는 머리의 왼쪽에서 흘러나온 피가 조용히 방의 바닥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방안에는 아직도 총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화약 냄새는 시체에서 흐르는 피 냄새에 그 지배적인 지위를 빼앗겼지만 오히려 화약 냄새는 피 냄새와 함께 섞여 더욱이 오묘한 냄새로 방을 가득 채웠다. 한 남자의 자살이라는 보잘것없는 상황이 권총이라는 특별한 배우를 만나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
 
누군가가 나의 시체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어 경찰에 신고한다면 나의 자살은 흥행하게 될 것이다. 한 남자의 자살은 흔한 일이지만 권총 자살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제보자는 끊임없이 경찰과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인터넷 뉴스는 제보자의 사연에 관심을 보일지 모른다. 음모론자들은 최초의 제보자를 용의자로 상상할지도 모른다. 한 남자의 자살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 하지만 한 남자의 권총 자살은 제법 많은 일을 만들어 내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나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나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 것이다. “20대 젊은 남자, 권총으로 자살한 채 발견돼. 경찰은 타살 가능성 수사.”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해서 온갖 소설을 써 댈 것이다. 나의 가족을 들쑤시고 다닐 것이며 나의 신상은 세상에 들춰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왜 자살을 했는지 온갖 추측을 이어갈 것이고, 내가 권총을 구한 경로를 추적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1994년에 태어난 한 남자란 걸. 나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었으며 오히려 행복한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자살을 빛나게 해 준 권총을 어디서 구했는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권총의 모델을 알아낼 수 없으며, 일련번호의 숫자 하나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2.
그렇게 나의 죽음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고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나의 죽음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재미있지 못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근거 없는 기자들의 허황된 추측에 질렸고 권총 자살에도 더 이상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죽은 나의 시체를 향해 나의 피보다 뜨거운 시선을 보낸 사람들은 그들을 흥분시킬 또 다른 흥미로운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의 죽음으로 시작한 무대의 막이 내렸다. 나의 죽음을 빛나게 해 준 우리의 주인공 권총 역시도 무대 뒤편으로 막 퇴장하였다. 나의 죽음에 환호했던 많은 이들이 무대를 뒤로하고 문 밖으로 떠나고 있다. 나의 차가운 시체를 향해 꽃과 눈물을 던지고 때로는 웃음과 박수를 선사한 고마운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에게 등을 돌리고 무대 반대편에 열린 문으로 퇴장하고 있다. 이제 객석에는 아무도 없다. 무대 위에도 화려한 조명을 받던 권총도 무대 뒤로 퇴장했다. 차가운 나의 시체만이 쓸쓸하게 무대의 불이 끝까지 꺼지는 순간을 홀로 기다리고 있다. 이제 진짜 죽음이 찾아온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던 생이 이렇게라도 주목받았다는 것에 나의 인생이 한번쯤은 빛났기 때문이다.
 
3.
자신의 머리를 권총으로 자살한 남자의 소식은 한동안 세상을 달구었다. 그의 신상부터 권총의 경로까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그는 1994년에 태어난 남자다. 그는 대학생이며 평범한 가정의 일원이다. 그의 가정은 중산층의 부족한 것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사교성이 풍부하며 많은 이들로부터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지 않았지만 중간은 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이들이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1994년생 남자의 한 전형이었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쏜 권총은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은 새로운 모델이었다. 제조사는 확인할 수 없으며, 권총에 대한 아무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그 권총을 불법 제조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추모 행렬을 만들어 냈다. 혹은 술자리에서 취객들의 웃음 섞인 안주거리로 웃음과 함께 술에 녹아들었다. 정치인들은 언론에 얼굴을 들이대고 한 청년의 죽음을 슬퍼한다면서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 무엇이 바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들은 무언가를 바꾸겠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자살을 동경하며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권총을 구할 수 없었고 혹여 구했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길 수 없어 곧바로 경찰에 자수했다. 기자들은 자살한 청년의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자살한 청년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제보자를 찾아 인터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제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어느 하루아침에 세상이 그의 죽음을 갑자기 알게 된 것 같은 신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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