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어느새부턴가 사람들 사이에선 회사라는 것이 지능 순으로 탈출해야만 하는 ‘덫’과 같이 비유되고 있는 듯하다. 회사 생활에서의 부당함을 그린 웹툰이 넘쳐나고, 회사 상사에게 말대꾸해 무안하게 만들거나 퇴사하면서 그간의 설움을 되갚아주는 에피소드는 SNS의 단골 주제 중 하나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지루해하는 회사 생활을 퇴근한 뒤에도 굳이 찾아보면서 열광하는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걸 보니 회사원들의 삶이 다 거기서 거기긴 한가보다.

회사가 힘든 이유는 많겠지만, 정말 몸이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거나 내 생활이 없을 정도로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힘들다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에선 본 적이 없다. SNS에는 이상하리만치 많은데 말이다. 물론 내 경험과 식견이 한정적이니 그런 분들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상 부득이하게 그런 상황에 처한 분들께는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다시 내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정말로 회사가 힘든 이유는 억지로 부여되는 지루하리만큼 규칙적인 삶과, 내 미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듯한 옆자리 선배, 부조리한 세상에 부조리 한 숟갈을 더 끼얹는 듯한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 등이 점점 회사원들을 힘들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특히 진보정권이 들어오고, 주 52시간 근무시간 제한 규정이 도입되고 나선 회사원들의 생활이 한층 나아졌음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 회사만 보더라도 퇴근 후에 취미 하나 없는 사람이 없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저녁 계획 세우느라 바쁘다. 또 그중 야망 있는 몇몇은 자격증이나 이직 준비 등 다른 삶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는 듯도 하다.

그리고 아마 지금과 같은 근무환경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는 힘들 것이다. 복지라는 게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앞으로 전진하긴 쉬워도, 후퇴하려면 누군가가 손에 피를 묻히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혹자는 과학의 발달이 주 4일 근무라는 혁신적인 제도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도 예상하고, 노동이 아예 종말 해버릴 거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있다.

“노동이 종말 한다. 그래서 회사를 안 나가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말만 들어도 토요일 오전 10시에 잠에서 깨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돈뿐인 걸까? 그럼 왜 다들 더 빨리,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거나 도박을 하지는 않는 걸까? 정말 이유가 돈이라면 회사원들 중에서 여유 있는 집안 출신의 사람들은 왜 회사를 다니는 걸까?

회사는 월급 외에도 분명 제공하는 가치가 있다. 사회적 명예와 안정성, 복지혜택과 같은 뻔한 얘기는 집어치우자. 사업으로 성공해서 돈을 더 많이 벌면 명예도, 안정성도, 복지혜택도 회사원보다는 좋을 테니.

회사가 주는 가치 중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적절한 어려움을 가진 임무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라는 것처럼 너무 어려워서 낙담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하루 종일 도장만 찍는 것처럼 너무 쉬워서 지루한 것도 아닌 딱 적절한 난이도. 느낌상으로는 65% 정도의 난이도랄까? 직급과 경력에 맞는 딱 그 정도의 임무가 나날이 몇 개씩 주어짐으로써 우리는 임무 해결에 대한 성취감이라는 보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얻는다. 그러다가 직급이 올라가고, 경력이 쌓이면 더 어렵고 장기적인 임무가 주어지고, 그에 걸맞은 조금 더 큰 성취감이 딸려온다. 마약도 그렇듯이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수준의 투약은 아무 자극도 주지 못하고, 점점 더 센 강도의 자극은 우리를 충분히 기분 좋게 한다. 회사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매 순간 업무를 배분하진 않겠지만, 참으로 우연스럽고도 자연스럽게 회사는 이런 루틴을 따라간다.

보통의 회사는 규칙적인 삶도 제공한다.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규칙적인 삶이 때로는 미치게 싫을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규칙적 삶이 주는 긴장감은 몸과 마음에 모두 위로가 됨을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뭐하지?”라는 고민과 생각 없이,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매일 보는 내 자리와 동료들이 있고, 거기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자판을 두드리면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큰 스트레스 하나는 없는 셈이다. 나와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요 몇 년간 회사를 떠나 집에 계시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는 없었던 병을 얻으신다. 수십 년 동안 마셔왔던 술인데 그렇게 마셔댈 때는 멀쩡하더니 좀 쉴라 치니까 이제야 병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치과고 안과고 병원을 뻔질나게 드나드신다. 단지 연세가 들어 그렇다기에는 너무나도 급작스런 병들이다. 몸만이 아니다. 부인과의 불화로 별거 또는 졸혼을 당하시는 아버지들이 많고,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 취급하시면서 자책하다가 우울증이 오시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이 평소와 달라진 건 단지 규칙적으로 나가던 회사를 이젠 나가지 않는다는 것.

말이 길어졌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회사는 돈 말고도 다닐 이유가 꽤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취감이 내 인생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살지 않으면 더 상쾌하다는 사람은 당연히 회사를 나오는 게 맞을 듯도 하다. 아니, 사실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회사에 붙어있다는 건 참 손뼉 쳐줄 일이다. 이젠 그만 자신을 괴롭히고 회사를 나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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