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모순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오늘날의 욕 중에서 육두문자를 제외한 최악의 욕은 무엇일까? 사용 빈도와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욕의 효과까지 고려했을 때 단연 ‘꼰대’가 아닐까 한다.

꼰대와 같이 의미를 다양하게 함축하고 있는 욕이 또 있을까. 꼰대라는 말에는 나이 듦과 고압적임, 자기중심적인 성향, 시대의 흐름에 대한 무지함,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의 부재 등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의 모든 성향이 담겨있다. 욕 해줄 말은 한 바가진데 언어 효율을 중요시하는 젊은 층의 특성상 ‘꼰대’라는 두 글자로 줄여 부르는 것이다.


30대 중반인 나는 꼰대라는 소리를 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얼마 전 젊은 꼰대라는 말이 생기고부터는 꽤 꼰대라는 말을 듣는다. 충격적이지만 결국 나에게 꼰대라고 하는 너희들도 꼰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 억울하진 않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꼰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꼰대라는 말은 ‘멋없게 나이 든다’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순화됐다고 인식하면 되는 건가?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꼰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평생 누군가는 꼰대라는 말을 (뒤에서) 하기만 하고, 누군가는 평생 (건너 건너) 듣기만 한다면 꼰대라는 말은 양쪽 진영에서 다르게 받아들여도 문제 될 게 없지만, 누구나 꼰대를 말하거나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꼰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꼰대를 말하다가 듣게 된 나 같은 사람들이 반성을 하든 변명을 하든 할 게 아닌가? 한마디로 꼰대의 변명을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꼰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다. 물론 요즘은 진짜 “나 때는 말이야.”를 곧이곧대로 말하는 꼰대는 없지만 결국 듣고 보면 다 저렇게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잔소리의 시작은 듣는 사람이 잘 됐으면 하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꼰대들은 자신의 주변인들과 나아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잔소리를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강압적으로 느낀다면 그 태도 자체가 주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결국 의도와 태도 간의 모순이 생기고 그 모순이 꼰대를 꼰대로 만드는 것이다. 의도와 태도가 다르면 의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 사이만 멀어질 뿐이다.


꼰대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는 과정에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으려면 의도와 태도를 일치시켜야 한다. 강압적인 태도 대신에 상대방이 알듯 말 듯 희미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철학을 설파해야 하는 것이다. 듣는 상대방이 ‘도대체 이게 뭔 소리지?’라고 느꼈다가 아주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 그때 그분이 했던 말이 이거였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아주 교묘하게 말이다. 듣기만 해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참을성 없이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에게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쉽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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