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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Nov 10. 2020

불안에 대하여

개그우먼 박지선이 세상을 떠나고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다.

불안은 언제나 내 감정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였고 그 불안이 요즘은 절정에 이르러 있다. 책의 내용처럼 불안이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면 내 감정도 훨씬 명확했다. 내 불안은 내가 받고자 하는 사랑이 무조건적인지 가면을 쓴 사람들의 사랑인지 따질 것도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뭐든지 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한없이 높고 찬란한 이상과 그 발치에서 낑낑대는 재능, 그 사이의 간극, 그에 따른 한없이 불확실한 가능성이 불안을 더했다. 불안을 줄이려면 결국 이상을 낮추든 재능을 높이든 그 사이 어딘가의 지점에서 둘이 만나게 조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과정이 진심에서 이뤄질 리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이상을 낮추는 것이나 없는 재능을 어떻게든 포장해서 만들어내는 것 모두 진짜가 아니면 금방 불안이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처음 읽는 건 아니다. 다만 박지선 씨 소식을 접하고 책을 손에 잡은 이유는 분명 있다. 그녀는 어떤 종류의 불안을 갖고 있었을까, 그녀도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과 현실 사이에게 갈등했을까, 생각이 들어서였다. 뉴스를 접하고 그 날은 혼자 밤 산책을 나왔다. 조용한 골목길을 걸으며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밤하늘 때문인지 인생이 더 무상하게 다가왔다. 그녀에 대한 안쓰럽고 아까운 마음과 함께 예상하지 못한 편안함도 찾아왔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하늘에서 살던 내 이상이 땅 위로 내려와 있었다. 별을 관측할 때나 대자연의 웅장한 모습 앞에서 존재의 초라함을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했다.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그런 것들을 느끼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날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감상이 제거되니 눈 앞의 문제들이 또렷해졌다. 준비하는 사업의 진척이라든지 행정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 전셋집 재계약 문제, 대출 한도 증액, 껄끄러워진 친구와의 관계 회복, 회사 복직 여부... 어젯밤에는 “죽기야 하겠냐”는 말로 대차게 했던 다짐이 촛불처럼 작고 초라하게 흔들거렸다. 다만 한 가지 전과 달라진 느낌이라면 이 모든 문제가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겪는 고민과 불안이 내 것이 아닌 느낌.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나라는 사람이 살았고, 그저 남들과 비슷한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살다가 이윽고 눈을 감았다, 는 평범한 남자의 일대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자기 객관화인지 현실 도피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생각은 이미 공중으로 붕 떠있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감정적 유체이탈을 더 길게 경험하려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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