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면서 몸에 해로운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이니, 사람이 자란다는 것, 또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남에게 헤로운 짓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듯싶기도 하다....(비-언어 깃-언어, 정현종)
지금은 어른이 되지 않은 중학생도 등굣길에 혹은 아파트 구석진 공간에 모여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별 부끄러움 없이 담배를 피우는 세상이 되었다. 해서 위의 문장은 다소 옛날이야기가 된 거다. 몇 달 전 나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곳에 놓인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학생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처음엔 스쳐 지나치며 ' 저 애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고민하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몇 번 더 보고 나서는 생각을 고쳐 먹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 여기 금연 구역인데, 담배피면 안돼, 부탁할게"라는 짤막한 한마디를 남기고 후다닥 출근길에 올랐다. 어색함과 민망함이 뒤따라왔지만 성큼성큼 도망치며 그것들을 따돌렸다. 애석하게도 내 충고는 먹히지 않았고, 그 애는 다음날 벤치가 아닌 더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번 더 말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시간대와 위치를 설명했다.
다행히 이후로 아이는 없었다. 담배를 끊었을 리는 없고, 분명 꼰대짓하는 아줌마가 볼 수 없는 곳으로 이동했을 테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어른처럼 스스로에게 헤로운 짓을 할 수 있게 된 건 누구를 탓해야 할까? 어른이 되고 나서 누릴 수 있는 자유만큼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세상 탓을 해야겠지. 자유를 누리면서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전보다 훨씬 많아진 탓을 해야겠지.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육십이 되어도 마냥 청소년기의 아이처럼 행동하는 어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 고통이 주는 성숙과 지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어른이 되었고, 살면서 먹고사는 문제로 어려워본 적 없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을 줄은 알지만, 그것을 나누고 함께 하는 일에는 서툰 사람들.
인류의 어떤 종족은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멸종하기도 하는 건 아닐까?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미래세대엔 '잉여인간'이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태어났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 존재하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들을 그는 잉여인간이라고 칭했다. 잉여인간의 탄생은 분명 다른 특성을 가진 인간의 멸종을 기반으로 이뤄지지는 건 아닐지. 산업화를 통해 탄생한 공장노동자가 수많은 농민들을 멸종시켰듯이. 자본주의가 수많은 돈의 노예를 탄생시켰듯이.
혼돈의 시대다. 시대의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이 줄어든 것 보면, 그들 역시 멸종 중에 있는 건가 싶다.
중심을 잡기 쉽지 않다. 세상 일에 눈을 돌리기도 어렵다.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지탱시켜 주는 건 독서뿐. 독서를 10분만 해도 스트레스 수치가 대량 감소한다는 문장을 봤다. 마음이 쓰릴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주로 미디어를 찾다가 그 문장을 보고 나선 책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효가가 좋았다. 매일 쓰는 작은 일기도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독서와 글쓰기로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헤로운 짓을 하려는 자신을 지켜나가는 어른이 돼야지. 나의 자라람은 헤로운 것이 되지 않아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