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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부자의 후회

나의 돈과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취미 부자의 후회

호모 리그렉투스


이사 온 집의 창문이 휑하다. 커튼을 달아볼까 '29cm' 에서 커튼을 검색하고 30페이지 넘게 둘러 본 다음 깨달았다. 예쁜건 비싸고, 예쁘고 비싼건 사이즈가 안맞고 , 사이즈가 맞는건 안예쁘고. 결론: 내 마음에 쏙 드는 게 없다. 에라이. 그럼 내가 만들면되지 않을까? F의 망상이 시작된다. 마음에 드는 천을 하나 사서 사이즈에 맞게 재단해서 만들면?가격도 더 저렴할 거고, 사이즈며 다지인이며 다 만족스럽지 않을까? 아 그럼 내가 재봉틀을 사야하나? 재봉틀은 얼마지? 아니 재봉틀을 산김에 커튼 말고 테이블매트나 티코스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재봉틀을 좀 잘 다뤄야될 것 같은데 학원을 알아볼까? 아 테이블매트는 라탄으로 만든 느낌이면 좋았을 것 같은데, 음 그럼 라탄도 사서 만들어 볼까? 라탄으로 뭔가를 만드는 건 쉬우니깐 원데이클래스면 되지 않을까? 그럼 원데이 클래스 가격은 얼마지? 라탄으로 테이블매트 말고 화분도 꾸미고 싶은데? 


커튼에서 시작한 검색은 어느 순간 미싱 학원과 라탄 공예 배우기로 진화했다. 다행히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는 그냥 적당한 커튼과 화분을 구매하는 것으로 끝냈다. 미싱 학원을 등록하기 전 방을 정리하다가 발레슈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발레슈즈 옆에는 권투 장갑이, 요가복이, 무용볼이, 수영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기타랑 탬버린이. 그 옆에 있는 컴퓨터엔 에이블톤과 프리미어가 깔려있었고. 


세상엔 왜이렇게 새롭고 재밌는 것들이 많을까? 


유혹에 약한 나는 누가 수영을 배운다하면 수영을 배우고 싶고, 영화에서 본 현대무용이 멋있으면 현대무용을 배워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 트위터에서 그랬지. 인생은 레벨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라고. 위안을 하면서 돈을 턱턱 내고, 학원을 턱턱 등록한다. 그래놓고 기껐해야 배우는 기간은 고작 3개월 남짓. 그나마 3개월이나 배우는 이유는 대부분의 학원이 1개월보단 3개월이 저렴하고, 3개월 뒤의 나의 기분과 상태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 사람의 앞일 누가 아나요? 6개월 뒤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을지. 아니 살아 있을지 (대부분은 잘 살아있고, 이사도 안간다 하핫) 그리고 6개월을 넘게 등록하면 보통 수업료가 100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에 괜히 통장에도 마음에도 부담감이 툭 하고 떨어진다. 그래서 만만한 3개월 등록을 하고 재등록을 안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대부분 취미의 유효기간은 3개월. 


배움을 그만두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가장 먼저 재미가 없어서. 킥복싱은 내가 해본 운동 중 가장 재미없었다. 아니 나에게  안맞는 운동이 있었다니. 팔을 휘두를 때마다 이 팔을 내가 왜 휘두르고 있지. 이렇게 휘두른다고 내가 나쁜놈을 만났을 때 이렇게 펀치를 날릴 수 있을까. 그래도 킥복싱을 배우면서 하나 깨달았지. 근육을 찢거나 늘리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근육을 펌핑하는 종류의 운동은 별로 안좋아하는구나. 대신 나 운동 취향을 발견했자나!


함께 하는 선생님, 동료들과의 케미도 중요하다. 선생님과 오묘한 정이 생기면 정말 그만두기 쉽지 않다. ㄱ이 소개시켜준 전화영어를 거의 1년이 넘게 하고 있는 이유도. 4년째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도. 그 원동력은 사람이다. 물론 일주일 3번 하는 전화 영어 수업에서 매주 1번은 미루고 독서모임도 귀찮을 땐 1-2달 안나가는데 이런 느슨한 관계가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 


반면 나의 취미 A (비공개입니다)는 다 좋지만 사람들과의 합이 잘 맞지 않는다. 수업 내용도 좋아 수업을 하는 순간에는 역시 배우길 잘했다. 나오기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수업을 가기전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기 싫은 마음이 너무 커진다. (죄송합니다..) 약간의 뒷담화(?)를 하자면 취미 활동임에도 선생-제자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함께 듣는 수강생들도 선생님이라기 보단 추앙하는 듯한 태도이다. 마치 팬클럽 같은(?) 한달에 한번 회식이 있다. 분명 우리는 다 같이 먹었는데 계산은 학생들 끼리 한다 (응?) 관계에 끈적거림이 느껴질 때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거리감을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이 취미 활동은 계속 배우고 싶지만 가르쳐주는 곳이 많이 없어 정체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취미는 어쩌다보니... ? 흐지부지 되었다. 취미라는 것은 나름 큰 의지력이 필요하다. 인생에 꼭 필요하지도, 책임이 있지도 않다. 오로지 재미와 성장만 있을 뿐. 내 자랑을 하자면 나는 빨리 적응하고 빨리 배우는 타입이라서 어떤 취미는 금방 곧 잘해내곤 했다. (모든 일에 남들보다 1% 정도 잘하는 재능이 있다. 하지만 2%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단점도 있지) 하지만 이 재미라는게, 호기심은 많지만 푹 빠지는 집중력이나 몰입이 약한 사람에게 재미는 가을 날 민들레 홑씨처럼 어디로 흩날렸는지 모르게 사라져 있다. 물론 재미야 있지. 하지만 특정 요일 특정 시간을 소요하고 돈을 들여서 할 만큼 재미있나를 생각해보면 항상 귀찮음이 나를 이겼다. 하지만 곧 내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취미가 새롭게 생겼기 때문에 뭐. 여전히 수영, 요가, 필라테스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귀차니즘이 재미를 이겨내버렸다. 


나는 자기주도학습 배우지 못한 어린이였다. 


초중고 내내 학원을 뺑뺑이 돌아가며 공부를 했다. 부모님이 정해준 학원 시간표 안에서 딱딱딱 맞춰 공부를 했던 어린이.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달은 성숙했던 어린이도 아니라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고 성적을 받는 삶을 살았다.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는 법은 도통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무언가를 배우고싶다 생각하면 혼자서 해보려는 것보다는 일단 학원 부터 알아보는 나는 정말...! 


그나마 학원을 오래 다녀 지금까지 혼자 사브작 사브작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있다. 바로 음악 만들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꿈에 그리던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역시 나답게 음악학원을 등록했다. 친구 2명과 함께 낙원상가에 가 통기타를 사고 첫수업에 들어갔지. 내가 발굴되지 않은 천재라 지금이라도 배우면 락스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0.1% 정도 있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게 락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락스타가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락스타의 여친이라도 되고 싶은 게 20살의 마음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밴드맨들과의 친분을 만들어야했고 열심히 기타를 배우는 수 밖에 없었다. 거의 1년을 넘게 배웠고, 한창 열심히 칠 때는 '황혼' 같은 핑거스타일의 곡들도 몇개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기타 수학은 기타선생님을 짝사랑하고 고백후 차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결국 나는 락스타도 락스타의 여친도 되지 못했지만 혼자 원하는 곡을 칠 수 있고 가끔은 노래도 만드는 10년이 넘은 취미를 가질 수 있었다. 역시 모든 것은 사랑의 힘인 것인가. 


"what's your hobby?"


취미는 사전적 의미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이다 (네이버 사전을 찾았다) 최근에 영어 영상을 보는 데 우리가 평소에 쓰는 취미가 영어로 hobby 가 아니하고 한다. 내가 배웠던 영어 무엇인가.  hobby는 전문적인 것이고, 우리가 알고있는 취미를 묻기 위해서는 what do you do for fun? 이라고 한다. for fun. 


나는 왜 쓸모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런 취미를 계속해나아가는가? 돈도 되지 않고, 경력도 되지 않고, 오로지 'for fun'만 되는 이 취미를.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떠한 명분은 가지고 싶은 동북아인의 마음이란. 이 돈으로 차자리 물건을 샀다면 뭐라도 남았을 텐데.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돈이라도 남았으려나. 회를 하는 이순간에도 해보고 싶은 게 자꾸자꾸 생각난다. 기회가 된다면 연기도 배워보고 싶고, 이전보다 넓은 부엌이 생겼으니 요리라던가, 베이킹도 배워보고 싶다. 좀 더 괜찮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드럼이나 피아노 아니면 보컬 레슨이라던가 미디를 배워보고 싶고. 그리고 또. 아니. 좀 그만. 


얼마전에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영화 <엑시트>를 다시 봤다. 우리 찌질한 용남이. 취업은 못해도 철봉 돌기의 달인이 된 용남이. 상악 동아리에서 시작한 취미 활동은 취업 활동에 하등 쓸모가 없었고, 방안에 꼭꼭 숨겨논 산악 장비는 마치 내 방 구석에 처박힌 나의 발레슈즈, 권투 장갑들이 생각난다. (그래도 용남이는 꾸준했기에 잘하기라도 하지만) 


용남산악 장비를 발견한 누나가 용남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렸던 것 처럼 세상은 나의 등짝을 찰싹 때리며 '너 또 쓸모없는 데에 돈쓸래? 시간쓸래?' 재촉하는 듯 하다. 하지만 재난상황에서 용남이를 재난에서 살린 건 좋은 회사도 많은 돈도 아니었다. 바로 산악 동아리에서 배웠던 기술. 


나의 취미들이 건물을 타고 유독가스를 피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해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깐 숨을 쉴 수 있게는 만들어 준다. 어쩌면 짧게 나마 배웠던 발레와 요가, 음악과 권투, 그리고 수많은 원데이 클래스들이 나를 살린게 아닐까. 아무튼 결론은 그냥 재밌게 살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약 50번의 여름과 51번의 크리스마스만이 남은 짧은 생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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