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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흔들려도.

꽃이고 갈대인 당신에게.

by 쓰는 인간


흔들린다. 몇 번째인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또 흔들렸다.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천번이나 흔들려 된 그 무엇이 저기 보이는 저 꼰대라면, 나는 차라리 어른이 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했는데, 글쎄. 혹시 나는 아무리 흔들려도 피어나지 않는 그런, 나는 처음부터 꽃밭에 우연히 날려 심긴 갈대 씨앗이 아니었을까.



그대, 그때, 그 일들이 전부 스쳐 지나간다.

쓸데없이 좋은 기억력은 지금도 그 일을, 그 이를, 그때를 굳이 선명하게 한다. 바람처럼 나를 흔들었던, 빗물처럼 나를 흠뻑 적시었던 사람. 그대, 그때, 그 일들.

갈대면 어떻고 꽃이면 또 어떠랴.

많이 흔들리고, 젖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네게 어떤 의미가 되지 않았어도 좋았다. 너는 내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바람이었고 또 빗물이었으니까.



흔들린다. 몇번인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흔들렸다.

갈대든 꽃이든 우리는 모두 흔들린다. 꽃이 좀 슬픈들 어떠랴? 너는 아는지, 석양 한 방울 묻은 갈대야. 네가 서럽도록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에 젖었다.

그래, 똑같다. 다 똑같다. 흔들린다고 무서워마라. 누가 너를 흠뻑 적신들 그 무엇이 너를 뽑아내겠는가?

흔들린다. 몇번인지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흔들렸다.

그런데 너는 알고 있는지, 갈대든 꽃이든 흔들린다고 죽진 않는다는 것을. 그래, 빗물이 적셔도 꼬락서니가 처량하면 처량했지 죽지 않는다. 괜찮다.


꽃이든 갈대든 바람 때문에, 빗물 때문에 죽지 않는다. 저 스스로 흙덩이를 버릴 때 죽는다.

그러니 버리지 말어라.

너를 품은 그 흙덩이를 놓지 말어라. 흙덩이는 뿌리를 버리지 않는다. 다만 뿌리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엇에 홀려 저 스스로 흙덩이를 놓칠 때 꽃이든 갈대든 그때 죽는다.

살아 있으라.

갈대든 꽃이든 살아만 있으라. 오늘 너의 뿌리를 감싼 보드라운 흙덩이를 놓지 말아라. 갈대든 꽃이든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 있으라.

살아만 있으라. 꽃이든 갈대든 살아 있으라. 흔들려도 좋고 흠뻑 젖어도 누가 뭐라고 하랴. 그대 살아만 있다면, 거기 있어 주기만 한다면.

그러니, 괜찮다.

괜찮다, 흔들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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