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Jul 27. 2015

행복의 화가, 르누아르

Auguste Renoir, 1841 - 1919

내게 그림이란 것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 그렇지, 예뻐야 해!


그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선(Drawing)과 색(Painting)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과 색 중 어떠한 것이 그림에 더 중요한 것일까요? 

(둘 다 중요하지 않나?)


지금에야 물론 우위를 내릴 수는 없지만,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색이 선만큼 중요시 여겨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18세기 이전까지만 했어도 그림의 기본이야말로 선묘, 즉 철저한 데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여기 선이 아닌 색을 통해서 형체를 만들어내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 화가의 이름은 바로 르누아르입니다.


Le Moulin de la Galette (1876)


시기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인상파에 속하는 르누아르는 인상파의 대표화가인 클로드 모네와 큰 친분이 있었습니다. 모네는 르누아르가 스무 살 때 그림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한 스위스 화가의 화실에서 만난 친구인데요. 그는 르누아르가 힘들 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던 후원자이자 동료 화가였으며, 그러한 모네를 르누아르는 평생 고마워하였습니다. 강하고 진취적인 성향의 모네에 비해 유약한 심성의 르누아르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언제나 운명 앞에 나 자신을  맡겨 왔고, 결코 투사적 기질이 없어서  
내 좋은 친구 모네가 없었다면 수없이 포기했을 것이다. 
그는 투사적 기질을 갖고 있어서 나를 밀어 주었다.


인상파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모네와의 친분은 여타 인상파 작가들과의 친분과도 연결되었으며, 이는 르누아르를 본의 아니게 힘들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걍 그림만 그렸구먼.)


당시의 인상파는 전통과 권위의 미술제인 ‘살롱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진보적인 그림을 그려 프랑스 화단에서 눈 밖에 나 있던 집단이었는데요. 르누아르만큼은 이러한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도 ‘낭만주의적 인상파’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였고, 그림이 매혹적이라던가 우아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인상파에 속해있던 르누아르는 상당한 기간 동안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누아르는 자신이 죽기 전 자신의 작품들이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스스로가 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중요한 화가로 추앙받게 되는 것을 목격한 행복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상파에 속해있던 젊은 시기의 르누아르의 그림과 이후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시기의 르누아르의 그림을 비교해 보았을 때, 화풍의 커다란 변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르누아르 본인은 스스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언제나 그려왔을 뿐입니다. 다만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평론가들의 펜 끝에서 비롯된 그림의 평가만 달라질 뿐이었습니다.



르누아르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윤곽선을 그려 깔끔한 데생을 기반으로 깔끔한 음영법으로 색이 형태에 머물러 있는 예전의 고전 화가들의 그림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의 그림은 윤곽선에 의존하지 않고 색을 통해서 형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르누아르의 색들은 형태에 구속되지 않고 언제나 자유롭게 느껴지지요. 


그래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화사한 봄이 느껴지곤 합니다. 

이러한 색의 이용은 당대의 문장가인 에밀 졸라 마저 극찬하였습니다.

(르...르누아르 선생, 그림이 몹시 아름답소..)


2009년 5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르누아르의 전시가 열렸었습니다. 당시 전시의 제목이 ‘행복을 그린 화가-르누아르’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르누아르와 관련된 수많은 단어들 가운데 누가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이용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르누아르가 행복한 화가라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제각각입니다. 

어떤 화가는 생계를 목적으로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는 반면에, 어떤 화가는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고자 그림을 그리고, 또 어떤 화가는 스스로의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그리는 화가들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화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르누아르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르누아르는 창작 목적으로 본다면 오직 아름다움 그 자체만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 화가였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만을 그렸지요. 

(르누아르는 여성을 몹시 좋아하였기에 그의 그림의 소재는 대부분 여성입니다. 이런 솔직한 변태 같으니라고...)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이렇게 확고한 목적이 있었기에 르누아르는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행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일이 스스로에게 어찌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그는 손에 지병인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손가락에 그림 도구를 매달고 생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행복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가가 이렇게나 행복하게 그렸는데,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요?

(내 그림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이전 06화 다빈치 코드를 넘어서는 모나리자의 비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