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지금이 대단한 시작의 직전일 것이라는 희망으로
대단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들 현재에는 그것을 알 길이 없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시 훗날 역사에 길이 남길 경기를 펼치지만 둘이 선수를 기용할 때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무언가를 예고하는 듯한 OST나 복선은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장치다. 반면 골방, 작은 프린터, 프린터가 일으키는 소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 앉아 있는 주인공, 이것이 당시의 실제 모습이었을 거다.
나는 무언가 시작하려 할 때 종종 이 장면을 떠올린다. 어마어마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대단한 OST도 무언가를 암시하는 대사도 없는 거라고 지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는 중일 거라고. 클라이맥스가 빛나려면 이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두려움을 잠재우고 훗날을 기대할 수 있다. - 김은경 에디터
지금 나의 순간은 훗날 보았을 때 어떤 OST가 들어갈까. OST가 들어가기는 할 순간일까.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기는 할까. 위의 칼럼처럼 지금은 알 길이 없다. 떠밀려 가듯 이런저런 상념과 대화들, 음성, 주변을 이루는 물질들 중에서 인상에 남는 것이 있었다가 또 새로운 혹은 헌 것에 눈길을 돌린다든가 하는 정처 없는 움직임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이것이 실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별일일 수도 있는 거지만 -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도시가 내다보이는 높은 곳을 올라가면 이런 감상은 더 강해진다. 올라서서 멀리 내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이 디오라마같이 작은 시야 안에 모일 뿐이라서 별일이 있다면 별일이 아닌 것으로, 별일을 바라고 있다면 그것이 벌어지고 있으리란 믿음을 안겨준다. 그래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이러한 안정감을 느끼려 사람들은 그리도 관광지에서 전망대를 찾나 보다.
어제는 친구와 돗자리와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 언덕을 올라 도시의 전경과 지는 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곳에 앉아 처음 친구와 만났던 고3 시절의 대책 없는 때로 돌아간 듯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제법 진중해서 우리가 세월을 지나오긴 했구나 하는 소재들도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친구의 남편은 출근을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났고 친구 역시도 잠시 일을 하러 나가 있어 부부의 집에 객식구로서 혼자 덩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노을을 바라보며 돗자리 위에 앉아 시답잖은, 그렇지만 소소하고 완벽한 행복을 채우고 있던 친구와의 순간은 어떤 배경음악이 놓이게 될까. 그리고 오늘 하루 놓인 이벤트도 당장 알 길이 없어 가만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역시도 무언가가 일어나기 전인 걸까.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희망과 기대로 덮이는 것은, 아마 이곳이 여행지라는 것, 그리고 그곳에 이방인으로만 남지 않게 해주는 친구네 부부의 따뜻한 안식처 안에 내가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304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81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