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imento

; 마음의 변화

by 르몬트

펜티멘토(Pentimento)란 마음을 돌아보거나 바꾼다는 뜻으로, 주로 회화에서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이후 일부를 수정하고자 이전의 그림을 새로운 페인트로 덮고 그 위에 바뀐 작화를 그리는 창작 과정의 일종을 일컫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덧칠로 가려진 이전의 그림이 윤곽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관람자들은 이러한 수정 속에 담긴 화가의 고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나의 선택들을 두 줄을 긋고 수정 테이프로 덧칠하여 새로운 선택을 입힘으로써 당장은 지워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걸어왔던 길들은 온전히 남아 있고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리하여 어떤 사전에는 이를 '잔상'으로 번역하고 있기도 하다. 기사를 읽다 찾은 단어인데, 왜 유독 이렇게 마음에 남는지 모르겠다.


어젯밤에는 잠을 설쳤다. 무언가를 하자니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모든 불을 끄고 잠을 청하지니 정신이 또렷해지기를 반복한 지난 밤이었다. 어제 거나하게 수면 시간을 채워서인가. 규칙적인 일상의 소중함을 이렇게 절실히 깨닫는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궁리를 해보면서 잠이 더 달아난다. 혹은 졸리는 눈을 애써 떠 책 몇 페이지라도 읽었다면 기분은 나아졌을까.


비가 한 차례 쏟아졌다. 그렇지만 찰나였을 뿐이라 그 순간을 놓치면 방안에 앉아 창가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가 될 지 모를 다음으로 기약해야 할 것이다. 덕분에 내내 공기는 과할 정도의 습도를 머금고 있어 축축한 물 속을 유영하는 듯 하다.


예전 사진첩을 뒤적이니 자연스레 옛날 생각이 난다. 아직도 바깥을 나서면 내가 있는 곳이 한국 같고 문득 마주치는 독일인의 얼굴이 낯설다. 그래서 밖을 지나다니면 가끔씩 (속으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국의 어느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여기가 바로 외국이고 나는 내가 집이라 불렀던 곳에서 먼 거리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정신이 확 드는 것이다. 방에 혼자만 잠겨져 있다면 이러한 생경한 감각을 맞닥뜨리지 못해 점차 현실과 '내 안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떠나왔구나. 나는 이 곳에 철저히 외부인이겠구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생각들이 내게 외로움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도 썼듯, 모를 일이다. 방 안에만 있으면 꼭 이 곳이 집이라는 착각을 들게 해서 (기실 오래 살다 보면 진짜로 집이 되니 착각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현실과의 간극을 더 크게 느낄 테니 그 때 비로소 어떠한 감정들이 나를 찾아올런지.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345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102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