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나를 앞지른다는 것, 전쟁에 대한 단상
전세계 난민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직도 명쾌히 맺어지지 않은 역병, 욕심이 불러일으킨 불필요한 전쟁, 그리고 향후 다가올 비가시적인 위험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예견들. 몇 장의 사진과 몇 줄의 설명과 몇 개의 숫자로 이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가 사람들이 유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의 상황이다. 정말 심각하구나,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서면 그만인 것이다.
어제 잠들기 전 Resignation Syndrom이라는 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부모에게 확실한 재앙을 주었고 동시에 아이들도 영향을 받았을, 전혀 'home'이 되어주지 못한 고국을 떠나 스웨덴으로 망명한 가족들이 내러티브의 주인공이었는데, 망명 신청이 좌절되어 다시 끔찍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불안정한 상황에서 영원한 수면 상태를 선택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 아이들에게 이런 무반응 상태가 찾아오는 건지, 망명인들을 수용하는 국가 중 왜 스웨덴에 있는 난민 아이들이 유독 이런 증상을 보이는 지는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했다. 현실을 알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여리다는 것.
잠에 들기 전 아이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일어나면 이 세상이 다시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동시에 그러지 않다는 것을 매일 잠에서 깨며 다시금 마주하는 걱정과 고통과 불안의 차가운 하루를 견디며 알아갈 것이다. 감히 아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서가 아이를 점점 드리우는 것이다. '체념'이 바로 그것이다.
다큐의 말미 무렵 이 원인이 좀더 명확히 입증된다. 똑같이 무반응 상태에 접어든 세 아이들의 가족에게는 각기 다른 진행상황이 전개된다. 한 가족은 한 차례 거부되었던 망명 신청이 다시금 받아들여져 더 이상 고통 뿐이었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부모의 노력으로 매일 아이의 곁에서 망명 허가의 내용이 담긴 판결문을 읽어주고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은 결과 잠에서 깬 아이는 자신이 잠들었던 1년 가량의 시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엄마, 내가 오래 잠들었어요?' 라고 물으면, '그래, 넌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어.' 라고 대답하는 부모는 그래도 희망찰 것이다. 아직 망명 절차는 진행 중이지만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것이 전업으로 바뀌고 생활에 점점 안정을 더해가는 가족의 아이는 완전히 깨어나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삼키거나 잠시간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신청이 거부되어 언제고 추방될 수 있던 어느 가족은, 이 체념 증후군에 오래 깨어나지 않은 둘째 아이에 이어 첫째 아이까지 증상을 보이고 있다. 아이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숨막히는 정적만이 흐르는 집안에서 누워 있는 두 아이를 번갈아 가며 돌보는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작년 내 생일엔 아이들이 꽃을 주며 나에게 입맞춤을 해주었어요.> 그녀는 아이들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지만 아이들은 반응이 없다. 감히 비교할 수 없겠으나 나 역시도 어릴 적 잠에 들기 전 깊이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 침대 위에서, 내일이 오는 게 막연히 두렵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크게 다투던 날이 특히 심했는데, 그런 밤이면 쉬이 진정되지 않는 심장박동을 멎게 하느라 애쓰던 적이 있었고 좀더 어렸을 때는 마찬가지로 몸을 가늘게 떠는 동생을 나 역시도 떨고 있는 주제에 가만히 토닥이기도 했다. 그런 나의 파편의 경험도 고통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을 위협하는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큰 고통일까.
감상 코멘트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가지는 것이다". 행복이란 사실 매우 간단한 공식들로 충족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특히 그 조건이 까다롭지 않을진대 그마저 느끼지 못하도록 몰아넣는 이는 누구인가.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Life overtakes me이다. 잠든 아이들을 아이들의 시간이 앞서버렸고, 그들의 행복을 불행이 압도하고 있다. 내 삶이 나를 앞지른다는 것,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273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109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지는 모름.